
우아한 언어, 보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사진을 다루는 책이지만, 책을 읽고 나니 사진보다 먼저 ‘태도’가 남는 것 같습니다.
『우아한 언어』는 잘 찍는 법이나 기술을 설명하기보다, 어떻게 보고, 무엇을 믿으며, 어떤 속도로 살아갈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책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판형 덕분에 가방에 넣어 다니며 조금씩 읽기에도 좋았고, 중간중간 실린 사진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 또한 책의 결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연출된 이미지’는 왜 우리를 피로하게 할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을 인용한 대목에서 이 책의 방향이 또렷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는 조작되거나 연출된 사진이 아닌, 직관과 자생의 순간을 존중한다고 말합니다. 카메라는 스케치북이며, 파인더는 세상을 의미하기 위해 잘라내는 도구이고, 그 안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사진뿐 아니라 글쓰기, 말하기, 심지어 일상적인 선택들까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미리 배열된 장면 속에서 안전한 답을 고르려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각을 얼마나 쉽게 배제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표현의 간결함은 수단의 절약에서 온다는 말 역시, 불필요한 설명으로 자신을 포장해 온 태도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당신, 왜 그렇게 선생을 믿지?”라는 질문이 남긴 것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행복했지만, 주변의 평가에 따라 스튜디오 사진으로 방향을 틀려했던 지은이의 사진 선생님 일화는 오래 남았습니다. 필립 퍼키스가 그에게 던진 질문,
“당신, 왜 그렇게 선생을 믿지?”
이 짧은 문장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했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자신의 느낌과 의지를 믿게 되었다는 고백을 읽으며, 저 역시 얼마나 많은 선택을 ‘권위 있는 말’에 기대어해 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조언을 듣는 일과 자신을 포기하는 일은 다르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조용히 일깨워주었습니다.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
서머힐 학교 교육자의 말과 함께 이어지는 저자의 경험은 특히 공감이 갔습니다. 외워서 얻은 배움은 시험이 끝나면 흐릿해졌지만, 몸의 감각을 최대치로 활용했던 배움은 시간이 지나도 또렷이 남는다는 고백 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배움의 체계가 허술해진다는 솔직한 문장도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그 허술함 속에서도, 마음을 꽉 움켜쥐었던 순간만은 기억 속에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묘한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움이란 결국 오래 붙잡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고집은 언제 아집이 되고, 언제 아름다워질까?
“고집은 사유한 자들의 특권”이라는 문장을 오래 곱씹게 됩니다.
자신의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고민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집. 그러나 사유가 얄팍해지면 그것은 곧 아집이 될 수 있다는 경계 역시 함께 따라옵니다.
세상을 두루 살피면서도 자신만의 고집을 지닌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 문장에서, 저자는 ‘강함’보다 ‘깊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라는 단어에 대한 저자의 사유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 중 하나였습니다. 이해는 결과가 아니라 시도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세상에는 이해했다는 오해만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쉽게 지나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예술 안에서는 그 오해가 자유롭기에, 오해로 남아도 그 사이에 이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무엇을 닮은 어른이 되었을까?
“우리는 각자 마음 쏟은 시간을 닮은 어른으로 자랐다.”
이 문장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계속 떠올랐습니다. 무엇에 시간을 쓰고, 무엇을 오래 바라보았는지가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아름다움을 탐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의 근육이 생긴다는 비유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쌓인 만큼 단단해지는 근육. 그 힘으로 편집하고, 선택하고, 방향을 정한다는 말은 삶 전체에 적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멈춰 서서 보는 사람의 용기
이 책의 마지막 인상은 ‘속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기보다, 멈춰 서서 타인의 속도를 관찰할 때 비로소 담아두고 싶은 장면이 생긴다는 말. 조바심 내지 않고,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마음을 흔든 순간만을 남기는 태도는 사진을 넘어 삶의 자세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 〈스모크〉 속 인물이 13년 동안 매일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 역시, 반복과 지속이 만들어내는 깊이를 조용히 보여주는 예처럼 다가왔습니다.
『우아한 언어』는 크지 않은 책이지만, 다루는 질문들이 작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고, 무엇을 믿고, 어떤 태도로 시간을 쌓아갈 것인지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간간이 실린 사진을 바라보는 재미도 좋았고, 내 감각을 조금 더 믿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을 남겨주었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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