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리는 자유를 말하면서도 끝내 줄을 자르지 못하는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자유로운 인간 조르바”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생각하는 인간과 살아내는 인간 사이의 간극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야기로 생각되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니, 자유를 동경해 왔지만 정작 그 자유를 감당할 용기는 없었던 제 자신의 얼굴이 어렴풋이 겹쳐 보였습니다.
산다는 것은 정말 감옥살이일까?
“산다는 게 감옥살이지 (…) 암, 그것도 종신형이고 말고, 빌어먹을.” (8쪽)
이 문장이 소설의 초반부터 묵직하게 붙잡았습니다. 삶을 감옥에 비유하는 이 냉소적인 문장은,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으로 내뱉어 본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같은 삶을 두고도 전혀 다른 태도로 살아가는 두 인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화자인 ‘나’는 끊임없이 사유하고 계산합니다. 반면 조르바는 삶을 감옥이라 부르면서도, 그 감옥 안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감옥이라는 인식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어떻게 숨 쉬며 사느냐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매사를 저울에 달아보는가?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17쪽)
조르바가 화자에게 던지는 이 말은,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습니다.
저 역시 어떤 선택 앞에 설 때마다 손익을 따지고, 의미를 재고, 실패 가능성을 계산해 왔던 사람이라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르바는 “눈 꽉 감고 해 버리라”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좀처럼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머릿속 계산기가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그 계산하는 머리를 집요하게 문제 삼습니다.
생각이 많을수록 삶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의 신비를 아는 사람들에겐 (책을 쓸)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314쪽)
이 문장을 읽으며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는 한 발 물러나 서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화자인 ‘나’는 책을 쓰고 사유하지만, 조르바처럼 온몸으로 살아내지는 못합니다. 머리로 이해하려 드는 순간, 삶은 이미 손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머리가 삶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조르바는 왜 매일 모든 걸 처음 보는 사람처럼 사는가?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77쪽)
이 문장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상징하는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조르바의 자유는 거창한 철학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매 순간을 새것처럼 대합니다. 익숙함에 기대지 않고, 의미를 앞서 부여하지도 않습니다.
반면 우리는 사물과 사람을 너무 빨리 이해했다고 믿고, 너무 쉽게 판단합니다. 그 순간부터 삶은 반복이 되고, 감각은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조르바의 태도는 자유라기보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의 회복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 왜 이렇게 아프게 들릴까?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428쪽)
조르바가 화자에게 던지는 이 말은, 읽으면서 가장 쓰라렸던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조르바의 눈에 화자는 여전히 ‘긴 줄 끝에 묶인 사람’ 일뿐입니다.
특히 “머리는 줄을 자르지 않는다”는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머리는 항상 예비를 남기고, 계산을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자유를 낭만적으로 찬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선택인지를 정직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이 책을 덮으며, 조르바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보다는,
나는 얼마나 내 삶을 대신 생각하며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조르바는 이상적인 인간이라기보다, 우리가 외면해 온 삶의 한 얼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잠시라도 머리를 내려놓고 몸의 명령에 귀 기울여 본다면, 이 책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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