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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부분)

어른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박완서의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을 읽고 나니, 이 책이 일반적인 산문집이 아니라 늙어간다는 것,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엄중한 자기 성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누구보다 날카롭게 사회를 바라보면서도, 그 시선이 늘 자기 자신에게 먼저 향해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책은 “어른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 노릇을 한다는 것은 어떤 태도를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독자에게 되돌려주는 글들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일일까?

책의 초반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노인의 ‘노추’에 대한 혹독한 문장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과 허명과 정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등은… 늙음을 추잡하게 만든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보통 노년은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박완서는 그 존중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특권이 아님을 분명히 짚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겸허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고집과 욕망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노인을 비판하는 책’이 아니라, 미리 늙음을 준비하라는 경고처럼 읽혔습니다. 어떤 태도로 나이를 먹느냐에 따라, 늙음은 추해질 수도 있고 귀감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또렷하게 전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늙는 것이 다음 세대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피천득 선생의 서재 이야기가 특히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작은 서재에 꼭 필요한 책만을 남기고, 허욕을 허용하지 않는 삶의 태도. 박완서는 그것을 ‘천진함’이 아니라 의연하고 당당한 지혜라고 표현합니다.

“늙음조차도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뒤에 오는 사람에게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준다.”

이 문장을 읽으며, 어른의 존재란 단순히 나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되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살아 있는 모습만으로도 본보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설득력 있는 어른 노릇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랴’가 잘못된 속담인 까닭?

KAL기 참사를 언급하며 박완서는 익숙한 속담 하나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 대목에서 작가의 윤리 의식이 얼마나 단단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체념하는 태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를 고치지 않는 사회. 박완서는 그것을 비겁한 합리화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생명 앞에서조차 “이미 늦었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는 과연 사람 노릇을 하고 있는지, 지금의 사회에 대입해도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졌습니다.

 

소비와 절제는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흥미로웠던 점은, 박완서가 무조건적인 절약이나 금욕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입이 있는 사람의 건전한 소비 또한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어른 노릇이란 극단이 아니라 균형을 감각적으로 유지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넘어서, 사회 전체를 고려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모를 떠나보낸 뒤 느끼는 홀가분함은 죄일까?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솔직한 고백은 이 책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다가온 부분이었습니다.
슬픔과 동시에 멍에를 벗은 듯한 홀가분함을 느꼈다는 고백은, 쉽게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이중의 고향, 분단의 기억, 애증이 얽힌 감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박완서는 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사람 노릇이란 위선 없는 솔직함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아이에게 일을 시킨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일을 시키고, 물건을 귀하게 여기게 하는 일은 단순한 훈육이 아니라 노동과 삶의 연결을 몸으로 이해하게 하는 과정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누군가의 노동 위에 내가 편안히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 감각이야말로 사람 노릇의 기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된 우리말이 주는 뜻밖의 위로

‘내남직없이’, ‘생급스러운’ 같은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우리말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 단어들은 글의 결을 한층 부드럽게 만들고, 박완서 특유의 시간이 쌓인 문장을 더 또렷하게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른 노릇이란 결국 어떤 태도일까?

삶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어른이 되라고 말하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이 들수록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책임질 줄 아는 태도.
그것이 박완서가 말한 어른 노릇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쉽지 않기에 더욱 곱씹게 되는 책이었고, 시간이 지나 다시 읽고 싶은 산문집으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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