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는 왜 ‘물건’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할까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은 처음 제목을 볼 때 다소 가볍거나 소비 취향을 다룬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불안과 공허를 문화심리학적으로 짚어보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건은 주제이자 도구일 뿐, 결국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한국 남자들은 할 이야기가 없을까?
“자기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한 존재다. 할 이야기가 많아야 불안하지 않다.” (p.8)
이 문장을 읽으면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남성의 존재 불안은 실패나 가난 이전에 ‘자기 이야기의 빈곤’에서 출발한다는 저자의 진단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직업, 연봉, 직급으로 자신을 설명하지만, 그것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이야기가 얼마나 될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곧 자기 삶을 해석할 언어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어서 선택하는 걸까, 선택하니 재미있어지는 걸까?
“재미있어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면 재미있어진다.” (p.24)
이 글은 일상적인 선택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흔히 ‘재미있어 보이면 한다’고 말하지만, 김정운 교수는 그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비록 돈이나 성과 같은 외적 동기에서 출발하더라도, 내가 선택했다고 느끼는 순간 몰입은 오히려 더 깊어진다는 설명이 경험적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어쩌면 삶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재미있는 것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택 자체를 남에게 넘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즐거움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갈등은 어떻게 다를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공유하는 부자에겐 갈등의 내용도 그 해결 방식도 다른 것이다.” (p.38)
이 대목에서는 인간관계의 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갈등이 없는 관계는 없지만, 함께 즐거웠던 기억이 많은 관계는 싸움의 결도 다르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견딜 수 있는 정서적 자산을 얼마나 쌓아두었는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약점 보완에 집착할까?
“약점을 고치기보다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자꾸 키워나가는 편이 훨씬 효과적.” (p.41)
긍정심리학에 대한 이 설명은 자기 계발 문화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 새롭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점을 채우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남성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정말 현재를 살고 있을까?
“인간이 경험하는 ‘현재’의 길이는 약 5초 정도다.” (p.71)
현재를 산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 속에서 허우적대는 시간이 훨씬 길지 않은가 돌아보게 됩니다.
다만 저자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이 5초는 주관적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팽창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현재를 산다는 것은 시간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느낌을 구체화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만 바라보는 삶은 왜 불행해질까?
“삶이란 목적을 사는 게 아니라, 과정을 사는 것.” (p.186)
단기수와 무기수의 비유는 삶의 태도를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출소라는 목적만 있는 삶과, 하루하루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 삶.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 역시 어떤 목표만을 바라보며 현재를 통째로 생략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목적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현재를 소모해 버린다면 삶은 점점 텅 비어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건은 어떻게 우리를 드러내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놓아둔 물건이 어디 있는지 기억하지 못해 매일 평균 55분을 허비한다.” (p.273)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물건’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기억, 정체성을 담는 그릇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물건을 곁에 두고, 어떤 물건을 잃어버리는가는 결국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무리
이 책은 남성성을 찬양하거나 규정하려는 책이라기보다, 존재 불안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물건, 선택, 현재, 과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지금 당신은 자기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
조용히 자기 삶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꽤 오래 남는 질문을 건네는 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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