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독서 리뷰

1. 정약용의 제자, 황상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정민의 『삶을 바꾼 만남』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학자 정약용’이 아니라, 한 사람의 ‘스승 다산’으로서의 면모를 그려냅니다. 그 중심에는 제자 황상(黃裳)이 있습니다.
강진 유배지에서 정약용은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지만, 끝까지 남아 진정한 제자가 된 이는 황상이었습니다. 다산의 맏아들 정약연은 “학업을 청한 자는 수십 명이었으나, 마지막에는 욕하고 돌아선 자도 있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런 세월 속에서도 끝까지 스승 곁을 지킨 제자가 바로 황상이었습니다.
2. 둔한 제자가 더 배우기 좋은 이유는?
황상은 어느 날 정약용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 저는 둔하고, 앞뒤가 막히고, 답답합니다. 이런 저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다산은 뜻밖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다산은 빠른 사람보다 느린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송곳은 쉽게 구멍을 뚫지만 곧 막히고 만다. 그러나 둔한 끝으로도 계속 들이 파면 뚫리고, 그 구멍은 다시 막히지 않는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는 공부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일에 ‘꾸준함’이 얼마나 큰 힘인지 다시금 느꼈습니다.
지식의 깊이는 재능이 아니라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다져지는 것 같습니다.
다산은 이를 세 번 강조했습니다.
“구멍을 뚫는 것도, 막힌 것을 트는 것도, 연마하는 것도 모두 부지런히 하면 된다.”
3. 꾸준함이 쌓일 때, 마음의 문이 열린다
다산은 학문을 단순히 ‘지식 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린이 학습의 핵심을 “문심혜두(文心慧竇)를 여는 일”이라 표현했습니다.
‘문심(文心)’은 글 속의 뜻을 깨닫는 마음이고, ‘혜두(慧竇)’는 슬기의 구멍을 뜻합니다.
머리로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으로 통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다산이 제자에게 가르친 것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깊이 보고 사람을 바르게 아는 ‘사유의 힘’이었습니다.
4. 사의재(四宜齋), ‘마땅함’의 방에 담긴 의미
정약용은 머물던 주막집의 좁은 방 서당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생각은 담백해야 하고, 외모는 장중해야 하며, 말은 과묵해야 하고, 동작은 무거워야 한다.”
이 네 가지를 지키는 방, 사의재는 다산의 인격 수양 철학을 상징합니다.
그는 ‘마땅할 의(宜)’를 ‘의로움(義)’으로 보았습니다.
즉, 마땅한 것을 행하는 것이 곧 옳은 삶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학문’이 결국 ‘삶의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아는가 보다, 그것을 얼마나 바르게 쓰는가가 중요하다는 다산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5. 다산이 말한 진짜 복, 청복(淸福)이란?
책 후반부에서 다산은 ‘복’에 대한 철학을 들려줍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열복(熱福)’이라 부르고,
고요히 자연 속에서 자신을 지키며 사는 삶을 ‘청복(淸福)’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열복을 얻은 사람은 많지만, 청복을 얻은 이는 드물다.”
요즘처럼 화려함과 성취가 복의 기준이 되는 시대에,
다산의 말은 마음을 맑히는 듯했습니다.
그가 말한 복은 외적인 부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 속에서 평온을 누리는 행복이었습니다.
6. 스승의 마음을 닮은 제자, 치원(巵園)
다산은 황상에게 ‘치원(巵園)’이라는 호를 지어줍니다.
‘치자 향기’에서 따온 이름이지만, 황상은 이렇게 풀이합니다.
“치자는 서리에도 잎이 시들지 않고, 눈 속에도 푸름을 지킨다.
꽃 하나에 하나의 열매를 맺으니,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결실이 있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스승이 제자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처럼 느껴졌습니다.
꾸준함은 결국 결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결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열매가 아니라, 스스로의 성숙으로 피어나는 열매일 것입니다.
7. 다산이 남긴 ‘사람을 기르는 공부’
『삶을 바꾼 만남』은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인지,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산은 제자에게 학문보다 더 큰 선물을 남겼습니다.
“공부는 사람을 닦는 일이다.”
그 한마디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처럼 느껴졌습니다.
요즘처럼 빠름이 미덕이 된 시대에,
다산의 가르침은 오히려 더 새롭게 다가옵니다.
“둔한 사람일수록 오래간다.”
공부에 대한 가르침에 그치지 않고,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게 붙잡아주는 다산의 따뜻한 철학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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