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산문을 김풍기 님이 모아 간행한 『누추한 내 방』은 허균의 지적 유목 정신, 그리고 독서와 사유의 확장성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책을 읽고 작성한 메모를 바탕으로 독서 리뷰를 작성해 봅니다.

1. 방 안에 머물며 세상을 건너는 법이 있을까?
책을 읽다가 문득 ‘세상을 직접 돌아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세상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허균의 글을 모은 『누추한 내 방』을 읽으며 저는 바로 그 생각에 깊이 잠겼습니다.
허균은 조선 시대를 살았지만, 그의 사유는 시대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섭니다. 그가 남긴 문장 중 “나의 정신은 세상의 장애를 넘어서 온천지에 가득한 것을”이라는 표현은, 좁고 누추한 방 안에서도 마음이 얼마든지 천하를 유람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앉아서 유목하기’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2. 허균은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을까?
『누추한 내 방』에 실린 여러 글 속에서 드러나는 허균의 모습은 단순한 학자나 문인이 아니라, ‘지적 탐험가’에 가깝습니다. 그는 “좋은 구절을 만나면 즉시 메모해 두고, 나중에 그것을 분류해 책을 엮었다”라고 합니다. 그 책이 바로 『한정록(閑情錄)』입니다.
그는 독서를 통해 단순히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을 자신의 언어와 관점으로 재구성하려 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독서노트를 만들거나, 책에서 밑줄 긋고 다시 생각을 정리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허균의 독서는 곧 사유의 축적이자 창작의 밑거름이었습니다.
3. 누추함이 오히려 사유의 자유를 낳는다?
“내 방이 지저분하고 누추하면 어떤가.”
허균은 이렇게 말하며 외형의 초라함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누추함 속에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키워냅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자연스레 요즘의 ‘미니멀리즘’과 대비해 보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단정하지만, 마음은 자꾸만 분주한 현대인의 삶에서, 허균의 방은 역설적으로 더 자유롭고 넓어 보입니다. 그는 세속의 번잡함을 떠나, 자신만의 독서와 사유로 세계를 완성해 갔습니다.
어쩌면 ‘누추한 내 방’은 단순한 공간의 묘사라기보다, 정신적 자립의 상징 같습니다.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태도가 사람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메시지로 읽혔습니다.
4. ‘앉아서 유목하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유목(nomadism)’은 보통 떠돌아다니는 삶을 의미하지만, 허균이 말한 것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앉아서 유목한다’고 말합니다. 즉, 몸은 머물러 있지만 마음은 세상 곳곳을 유람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17세기 조선에서 나온 표현이지만, 놀랍게도 21세기 우리의 삶에도 어울립니다.
우리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디지털 공간을 통해 세상과 연결됩니다. 육체는 한자리에 있어도 정신은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허균의 “앉아서 유목하기”는 결국 ‘지적 이동성’에 대한 찬가처럼 들렸습니다.
5. 지금 우리에게 ‘누추한 방’은 어떤 의미일까?
현대의 방은 더 이상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닙니다. 일하고, 공부하고, 꿈꾸는 모든 일이 방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허균이 말한 ‘누추한 내 방’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방이 좁아도, 책 한 권과 사유가 있다면 세계는 무한히 확장됩니다.
허균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떠돌지 않아도, 마음이 넓으면 천하를 품을 수 있다.”
6. 허균의 독서법이 전하는 교훈
허균은 단순히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즉시 메모하고, 나중에 분류한다’는 습관은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해 두는 일. 그것이 사유의 씨앗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허균의 『한정록』이 그렇게 탄생했듯이요.
7. 누추한 방에서 다시 세상을 보다
『누추한 내 방』은 단지 옛사람의 사유를 엿보는 책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 ‘머무름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책 같습니다.
바쁜 세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책을 읽고 사유하는 일. 그것이 허균이 말한 앉아서 유목하는 삶의 본질 아닐까요.
누추한 방에서도 마음은 천하를 여행할 수 있다는 말이, 요즘처럼 복잡하고 바쁜 시대에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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