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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를 결합시켜 사랑과 인간관계에 관해 탐구하는 독특한 연애소설을 써온 스위스 태생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 우아하고 독창적 방식으로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아우르며 현대적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해온 저자가 '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재료나 형태나 생채를 통해 우리의 우정, 친절, 섬세, 지성, 그리고 힘 등의
저자
알랭 드 보통
출판
청미래
출판일
2011.08.10

“우리의 감정은 건축에 반응한다”

건축은 단지 공간을 채우는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책 『행복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Happiness)』은 우리가 머무는 공간이 내면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유하게 만든다. 그는 건축이 “명령이 아닌 제안과 권유”로서 우리의 감정을 건드린다고 말한다.

이 책은 철학과 미학, 그리고 일상 경험을 결합해, '왜 우리는 어떤 건물 앞에서 감동을 느끼는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건축이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섬세하고도 인문학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1. 우리가 머무는 공간이 우리를 만든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살고, 일하고, 머무는 공간이 우리의 정서와 태도, 나아가 삶의 방식까지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좋은 인테리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공간과 인간의 정체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깊은 관계에 있다는 성찰이다.

예를 들어, 그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한 경외감, 이슬람 건축의 반복되는 기하학에서 오는 초월적 감각, 맥도널드 매장 안의 소란함에서 파생되는 소외감을 비교한다. 건축은 우리 내면의 ‘자아’를 끌어내거나 억누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셈이다.

2.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행복의 건축』의 핵심 질문 중 하나는 바로 “무엇이 아름다운 건축인가?”이다. 고전 양식이 수 세기 동안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던 시대를 지나, 지금 우리는 현대 건축의 다양성과 혼란 속에 살고 있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이란 사람들이 추구하는 어떤 것을 물질로 나타내는 것이다.”

즉, 건축은 인간이 사랑하는 가치들 — 질서, 균형, 우아함, 조화 — 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어떤 건물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건축물이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 혹은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이상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일본 미학과 '와비사비(Wabi-sabi)'

알랭 드 보통은 일본 건축에서 ‘결함’, ‘쇠퇴’, ‘세월의 흔적’을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보는 미학에 주목한다.
그는 광택 없는 나무, 금이 간 도자기, 벽에 스민 녹을 “도덕성에 대한 성찰이 담긴 예술적 그릇”이라 표현하며, 일본의 전통적 미감인 와비사비(わびさび)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 와비사비: 와비(侘)는 덜 완벽하고 본질적인 것을, 사비(寂)는 오래되고 낡은 것을 뜻하며, 이 두 단어가 합쳐져 '부족하지만 내면의 깊이가 충만함'을 의미.

"나무와 돌, 그리고 현대의 콘크리트와 나무는 천천히 위엄 있게 나이를 먹어간다. 히스테리를 부리는 유리도 아니고, 찢어지는 종이도 아니다.”

이는 지속 가능성, 에이징 뷰티(aging beauty), 소박함의 미덕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 건축과 디자인계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이다. 

4. 질서, 균형, 우아함 – 건축의 미덕

알랭 드 보통은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로 질서, 균형, 우아함, 일치를 꼽는다.

  • 질서: 예측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안정을 느끼는 이유.
  • 균형: 대립되는 요소 간의 조화 — 옛 것과 새것, 자연과 인공.
  • 우아함: 과장 없는 세련됨, 단순성 속의 노력.
  • 일치: 부분과 전체, 배경과의 조화.

이러한 요소는 ‘좋은 디자인’ 혹은 ‘좋은 도시 계획’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기준이 될 수 있겠다.

5. 건축과 윤리

알랭 드 보통은 건축을 윤리적인 행위로 바라본다. 나쁜 건축이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무지, 탐욕, 저열한 야망이 만들어낸 “지우기 어려운 잘못”이라는 것이다.

“건축은 우리의 뜻에 따라 지어지므로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그는 우리가 건축을 통해 희망을 설계하고,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단지 건축가의 일이 아니라, 공공정책, 도시계획, 시민의 미적 감각까지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책무이다.

마무리

『행복의 건축』은 단지 건축 이론서가 아니다. 그것은 공간과 감정의 연결을 탐색하는 철학적 에세이이며,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건축’이라는 언어로 표현해 내는 문학작품이다.

일상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들고, 행복과 미학, 공간의 윤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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