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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독서] 흑산

흑산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지식인들과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린 김훈의 역사소설 『흑산』.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루고 있다.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 생활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천주교 순교자인 황사영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여기에 조정과 양반 지식인, 중인, 하급 관원, 마부, 어부, 노비 등 여러 계층의 생생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엮어냈다.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에서 시작한다. 정약전은 막막한 흑산 바다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그곳에서의 새 삶을 기약한다. 그 시기, 정약전의 조카사위 황사영은 바다 너머 새 세상의 소식을 꿈꾸고 있었는데….
저자
김훈
출판
학고재
출판일
2011.10.20

 
 
 
맞다. 목포 남서쪽에 있는 흑산도가 주요 무대다.
흑산도는 섬의 95%가 상록수로 되어 있어 
멀리서 보면 검은 산처럼 보이고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이라 한다.
 
주인공 정약전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죄(?)로 형제들과 같이 잡혀 들어가
동생이 참수되고, 이 섬에 유배되어 온다.
 
유배생활 중 흑산도의 물고기를 관찰하여
해양생물학 서적을 쓰며
<흑산어보>가 아니라 <자산어보>라고
섬의 이름을 자산으로 바꾼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왔다.
 

-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혹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 바꾸시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이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자산의 물고기다. 나는 그렇게 여긴다.(338)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배생활이지만 
한가닥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듯하다.
 
그러나 책 뒤의 연대기를 보면 
유배는 풀리지 않았고
그는 이 섬을 살아서 벗어나지 못했다.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묵직한 글이 
글의 입구부터 느껴졌다.
 

바다는 이 세상 모든 물의 끝(10)

 
시냇물 모여서 큰 강물
큰 강물 모여서 바닷물이라던 동요가 떠오른다.
바다에 모인 물들은 어디로 가나…
생각해 보니 바다가 모든 물의 끝이 맞다.
 
그 끝 너머에 흑산도가 있다고.
귀양길의 까마득함이 생생하다. 
 

바다는 땅 위에서 벌어진 모든 환란과 관련이 없이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으로 펼쳐져 있었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에서, 움트는 시간의 냄새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어디인가가 흑산도였다. 죽지 않기를 잘했구나 저렇게 새로운 시간이 산더미처럼 밀려오고 있으니(19)

 
유배 죄인이 되었지만 
죽지 않고 산자의 무안함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인가
죽은 자에 대한 책임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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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로 간다는 것이 사람살이의 근본이라는 것을 마노리는 길에서 알았다.(41)

 
배신, 배반, 밀고, 협박, 고문, 강압, 갈취, 폭정…
예나 지금이나 인간 사회에 가득한 부조리
 
하층민일수록 더욱 옴짝달싹 못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조여있는
사회 조직의 억압이 책을 읽는 내내 숨 막히게 하는데
그래도 사람살이의 근본은 사람이 사람에게 가는 것이라고
 

황사영은 육손이를 데리고 올 때 조안나루에서 장인 정약현이 한 말을 떠올렸다.…..... 육손이는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일세, 그걸 잊지 말게…… 그때, 황사영은 그 말의 단순성에 놀랐으나 이제는 그 말의 깊이에 놀라고 있었다.(107)

 
복잡하고 얕은 말들이 시끄럽게 난무하는 요즘 
단순하고 깊이 있는 말을 듣고 싶고
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약현은 집안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말할 때는 가끔씩 이야기에 끼어들어서
-억지로 키우려고 공들이지 말고 스스로 되도록 공들여야 한다. 키워서 길러내는 것은 스스로 됨만 못하다.(166)

 
<흑산>에서 올바른 자녀교육법을 보다니.
요즘 학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교육지침으로 손색이 없다.
부모의 잘못된 욕망으로 멍들고 삐뚤어지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고, 듣고 있는가. 억지로 키우려다가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옛날의 문초 방식은 무조건 때리고 윽박지르는 것인가 보다.

“우선 장 스무 대를 맞아라.
맞고 나서 다시 고해라. 매가 너에게 자양이 되기를 바란다.”
또는,
“우선 장 서른 대를 맞아라. 매를 헛되이 맞지 말고 맞으면서 스스로 깨치도록 애써라.”
이런 식인데, 이건 아닌 것 같다.
 
책 뒤쪽에 작은 사전 같은 낱말풀이가 있다.
그만큼 낯선 단어들이 많았고,
읽기 어려웠지만
그 낱말들 덕분에 그 시대가 더 가깝게 들여다보였다.
수십 권 참고문헌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 속에서 찾아낸 낱말들인가 보다.
지은이의 노력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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