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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독서] 그림의 방

 
그림의 방
세계 각지의 이색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보석 같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온 ‘뮤지엄 스토리텔러’ 이은화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기약 없이 길어지는 팬데믹으로 인해 삶의 활력을 잃어버리기 쉬운 요즘, ‘행복한 아트홀릭’을 자처하는 지은이가 미술 애호가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그림의 방’을 마련했다. ‘발상의 방’ ‘행복의 방’ ‘관계의 방’ ‘욕망의 방’ ‘성찰의 방’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방에는 각각 열두 점의 미술작품이 걸려 있다. 이 다섯 개의 방에서 독자들은 최초의 추상화, 최초의 자화상, 여성이 그린 최초의 남성 누드화, 유명 초상화가의 마지막 여성 초상화 등 미술사의 굵직한 명화들을 만날 수 있으며, 세기의 명작을 탄생시킨 우연, 행복을 그린 그림으로 알려진 화가들의 남모를 고통, 예술을 위해 안정을 멀리했던 미술가의 고독과 절망 등 그림 뒤에 가려진 복잡한 인생의 단면도 엿볼 수 있다.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의 유명 미술관이 소장한 명화들로 채운 이 특별한 그림의 방에서 미술과 만나는 내밀한 기쁨을 마음껏 즐겨보자.
저자
이은화
출판
아트북스
출판일
2022.04.08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창가에 놓인 침대 위에 창을 뒤로하고 앉아 소녀가 책을 읽고 있다. 

자세히 보니 살구색 원피스를 입고 리본이 달린 구두까지 신었다.

외출 준비를 하고 잠깐 기다리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일까.

먼저 읽은 부분에서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지 

책장 사이에 손가락을 끼운 체 앞쪽을 펼쳐 보고 있는 걸 보면

외출하고 돌아오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해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책 속에 설명이 있겠지.

 

발상의 방

 

위대한 화가로 미술사 속에 자리매김하는 자는 그저 그림 그리는 기술이 뛰어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남다른 시각과 표현 방법을 찾아낸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냥 잘 그리는 사람이야 얼마나 많은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들 대부분은 그 남다름으로 인해 당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어려웠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알브레히트 뒤러는 가난한 금세공사 집안 출신이지만

저작권의 중요성을 발견해 자기만의 서명을 새기고, 소송까지 불사하며

당대에 명성과 부를 누렸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눈높이가 적당했기 때문일까, 시대를 잘 타고난 때문일까.

 

1862년 스웨덴 출신으로 칸딘스키보다 5년 먼저 추상화를 그렸고,

잭슨 폴록보다 40년 먼저 바닥에 놓고 그림을 그렸지만

당시 기준으로 장수한 81세로 죽을 때까지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 힐마 아프 클린트,

 

눈속임을 위해 액자 뒷면을 그린 그림을 4년 동안이나 그렸던 코르넬리스 헤이스브레흐츠,

카를 슈피츠베크의 재미있는 풍자화가 기억에 남는다.

 

행복의 방

 

화가로 활동한 3년 동안 400점이 넘는 작품을 완성한 장래가 촉망되는 화가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소집되어 전쟁터에 불려 간 지 한 달 만에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죽고만 아우구스트 마케의 삶이 안타깝다.

 

빈민촌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과 집이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이라 한 칼 라르손이 그린 <게임준비>. 

실제로는 바람 불고 추운 겨울밤을 게임하기 좋은 밤으로 바꿔 부른 것이라니 

그림에서 그의 긍정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관계의 방

 

프랑스 개념 미술가이면서 사진작가인 소피 칼은 

남자 친구의 이별 편지를 예술로 승화시켜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전시하고, 

이별 극복기를 책으로 출판하기까지 했다니 

독특한 이별 방법에 한 번 놀라고,

진정 삶의 모든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라 인정하게 된다. 

 

19세가 되기 전 그림 선생에게 강간당하자 고소하여, 

견디기 어려운 부끄러운 검사와 억울한 절차를 이겨내고 

재판을 통해 추방령을 받게 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성경 속 유디트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며 

자신의 얼굴과 그림 선생의 얼굴을 넣어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복수하고 있다니 통쾌하다.

 

“안에 입은 고급 리넨 셔츠가 보이게끔 소매를 길게 튼 황금색의 짧은 재킷" p.152

중세시대 남성복 팔 부분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는 이유가 궁금했었다. 

속에 입은 고급 셔츠가 겉옷에 가려 

사람들이 보지 못할까 봐 겉옷을 찢은 것이라니 정말 사치와 자랑질의 끝판이다.

 

욕망의 방

 

“돈은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이다. 주인과 노예 사이에 어떤 인간적인 관계도 없는 비인격성에서 이전의 노예제와 확연히 구분된다.” -레프 톨스토이

칼탱 마시의 <대금업자와 그의 부인> 편에 실린 인용문

 

800 프랑으로 계약한 아스파라거스 한 묶음을 그린 정물화를 받은 의뢰인이 

1000 프랑을 보내자 작은 캔버스에 아스파라거스 한 뿌리를 그려 

‘하나가 빠졌다'는 메모와 함께 보냈다는 에두아르 마네의 유머가 재미있다. 

책에는 아스파라거스 한 뿌리를 그린 ‘아기 그림’만 있어 

곧바로 ‘엄마 그림’으로 불린다는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을 그린 그림을 찾아보았다.

 

성찰의 방

 

조지 프레더릭 와츠가 그린 ‘희망'이 난해하다.

희망이라면 피어나는 꽃봉오리나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붕대로 눈을 가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다 끊어지고 한 가닥이 겨우 남은 악기를

힘들게 구프려 연주하는 모습이라니.

나는 꿈과 희망이 가득 찬 상태를 상상하는데

작가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하나보다.

 

그림 하나, 인용문 하나, 짧은 해설과 간략한 작가 소개

신문 칼럼을 편집해 만들었다더니

부담 없이 읽으며

알지 못했던 그림 이야기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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