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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독서] 혁신의 미술관

 

 
혁신의 미술관
미술의 혁신을 넘어 일상의 혁명으로 고급한 미술 지식을 맛깔나게 풀어놓으며 풍요로운 지적 만찬을 선사해온 미술평론가 이주헌이 새 책을 펴냈다. 이번에 그가 천착한 주제는 ‘혁신’이다. 이주헌은 미술사의 시공간을 능란하게 가로지르며 혁신의 비밀을 파헤칠 뿐 아니라 경제와 산업 분야의 혁신을 통찰하여 오늘날의 풍요와 편리, 안전 등이 혁신의 결실임을 역설하고 있다. 현대인이 하루종일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의 경우에도 ‘혁신’이 초점이 된 지 오래고, 심지어 정부 운영과 예술 창작에서도 혁신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우리가 혁신, 하면 떠올리게 되는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끄는 힘이라고 보았다. 이때 주인공은 물론 자본가이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까마득한 석기시대, 엄혹한 환경에서 생존이 제일가는 목표이던 시대에도 인류는 동굴 벽에 놀랄 만큼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이처럼 인류 문명이 태동하기 전에 이미 꽃을 피웠을 정도로 미술은 원초적인 활동이며 혁신의 DNA가 내장되어 있다. 사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미술사 자체가 혁신의 역사이며 (자본주의의 주인공이 자본가이듯) 이 역사의 주인공은 위대한 미술가들이었다.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를 내세웠듯이 미술가들도 기존 이념과 체제에 길들지 않고 파괴와 창조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왔다. 이들은 미술의 천재일 뿐 아니라 혁신의 천재였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르네상스, 이후 근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업적을 남긴 미술가들의 혁신의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
이주헌
출판
아트북스
출판일
2021.11.11

 

1부 혁신에서 길을 찾다

 

이집트 조각은 그리드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직육면체 모양 돌의 각 면에 모눈을 긋고 모양을 그린 다음 각 면에서 쪼아 들어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누가 만들더라도 일정한 수준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리드 방식의 단점인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모양은 그리스 조각에서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둬 몸의 각 부분이 조금씩 틀어진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해결되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율에 의해 종교적 이미지가 없던 유대교에 기반을 둔 초기 기독교는 선교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의 토착 이미지와 융합하였다.

이스라엘의 젊은 남성은 머리가 짧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상과 융합되어 예수님의 머리가 길게 표현되었고,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상, 날개 달린 천사의 모습 등이 이종교배와 혼융에 의한 혁신의 결과다.

 

원근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심리적, 위계적 원근이 작용해 중요한 대상을 위쪽이나 중심에 크게 나타내었다.

 

“마차를 아무리 연결해도 기차가 되지는 않는다.” -조지프 슘페터

 

목판화 시장의 팽창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판화가나 인쇄소 같은 장인들이 아니라 성화 판매로 수익을 올린 수도원과 성당이었다. 협소한 기능적 사고를 넘어 광범위한 통합적 사고를 해야 하는 예로 들었는데, 내 생각엔 조직과 독점에 의한 권력의 힘 때문이라 생각된다.

 

“의미를 중시하고 의미를 창출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 혁신을 가져올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삶에 보람을 가져온다. 그것이 꺼지지 않는 창조의 에너지가 된다.” p.93

 

선구자 기업보다 초기 개선자 기업의 실패율이 47%:8%로 훨씬 적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 개선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애덤 그랜트(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2부 혁신의 동력

 

경영자가 교과서적인 관념론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고객과 교감하며 답을 찾아야 하듯 미켈란젤로 카르바조는 종교화를 그리며 고결함을 배제하고 빈민이나 서민의 모습을 그려 논란을 낳았다.

고전적 이상미를 보여주는 르네상스화는 실제 현장의 모습을 포착한 사실적 바로크화로 혁신되었고, 사실 그대로 재현하려는 욕구가 사진, 영상, 홀로그램, 가상현실, 증강현실 개발의 자원이 되었다.

 

네덜란드가 종교의 자유를 천명하자 박해를 받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의 다양성이 부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부유해진 일반인들이 그림을 구입할 수 있게 되자 교회나 귀족의 주문에 의한 소수의 종교화나 초상화에서 누구나 걸어두고 싶은 친근하고 다양한 그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풍경화, 정물화, 동물화, 풍속화 등이 제작되었다.

 

관찰은 관찰자의 편견과 경험을 반영하므로 객관적일 수 없으며, 생각의 한 형태가 된다. -로버트&미셀 루빈스타인. 모두 빛을 관찰한 인상주의 화가이지만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리, 쇠라, 시냐크, 세잔 등의 그림은 서로 매우 다르다.

혁신가는 본질적으로 관찰자다. -핼 그레거슨(MIT 리더십센터)

 

초현실주의는 합리주의를 배격하고 무의식으로부터 창조의 영감을 얻어 무의식적 상태에서 손이 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형상을 만드는 ‘오토마티즘’과 측정 대상을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하여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만들어내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낳았다. 

 

의사결정 과정에도 토론과정과 의사결정을 분리하고 그 사이에 산책이나 낮잠 같은 무의식이 개입할 시간을 주면 더 좋은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추상미술abstract art은 대상에서 특정한 요소를 ‘추출'하여 단순성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세계의 복잡한 체계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핵심 의미를 찾아 살아가는 미니멀라이프도 삶의 추상화로 볼 수 있다.

 

슬로 아트 데이(필 테리): 일반적으로 작품 하나를 감상하는 시간은 27.2초에 불과해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없다. 앎에 대한 집착이 느낌의 생성을 막을 수 있으므로 작품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정보를 주지 않고 한 작품을 10분 이상씩 모두 다섯 작품을 감상한 후 점심을 먹으며 자신의 감상에 대해 이야기. 

 

예술작품을 만들거나 감상하기 위해서는 몰입이 필요하다. 몰입하는 것은 자기 다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자기 다운 생각을 펼치는 것이므로 자신다워지는 것이다. 작품을 제작하거나 감상하는 활동을 통해 우리는 삶의 주체성을 잃고 노예로 전락한 상태에서 다시 내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3부 혁신을 이룬 미술가

 

가난한 염색공(틴토레)의 21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틴토레토라는 별명으로 불린 야코포 로부스티는 티치아노에게 그림을 배우다 며칠 만에 강한 개성으로 쫓겨났고 평생 견제를 받았지만 꿋꿋하게 독자노선을 걸으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혁신적인 그림들을 완성하였다. 돈보다 명성과 영향력을 추구한 그는 그림을 빨리 완성하는 장점을 이용해 때로는 작품을 공짜 또는 제작비만 받고 제공하여 경쟁자들의 배척을 극복하였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형제 사이에서 생활하며 터득한 그만의 생존비법이 아닐까?

 

위대한 예술가는 오랜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소수의 걸작만을 제작하였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오히려 많은 작품을 만든 사람이 많으며, 그래야 졸작도 많지만 걸작도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가스는 대중들이 예술품의 조형적 성취나 세련된 스타일보다 이야기를 찾는 것을 보고,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깨달아 극작가처럼 생각하며 연극 같은 그림을 그리고 가난한 서민들이 쉽게 살 수 있도록 판화로 제작하였다.

 

그림을 그리거나 미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 창의성이 필요할 것 같다. 작품의 구상은 말할 것도 없고, 재료의 선정과 표현 방법을 개선하는 과정에 발명 수준의 남다른 혁신들이 있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그런 과정들에 대한 기술을 기대하고 읽었는데 자기 계발 서적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다. 

지은이의 서술을 뒷받침하는 그림들이 잘 선정되어 있어 따로 웹 검색을 하지 않아도 돼 편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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