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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독서] 초상화로 읽는 세계사

 

초상화로 읽는 세계사
절대왕권 시대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국왕과 그를 둘러싼 왕실의 인물들. 그 존재만큼 이미지 관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그들의 초상화를 심혈을 기울여 제작해 보존하였다. 국왕이나 왕실 인물뿐만 아니라 그들에 버금가는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사람들 역시 초상화로 남았고, 기독교 중심 사회이다 보니 종교 지도자들도 그림으로 남게 되었다.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의 초상화는 역사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듯한 역할을 한다. 그림 속에는 인물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 등 역사적 사실 그 자체는 물론 당시의 문예사조나 유행, 실세 권력의 향방도 잘 나타나 있다. 또 국왕 혹은 유력 인사들이 총애했던 연인들의 초상화도 그 시대의 분위기를 흥미롭게 전달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초상화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가장 좋은 결과물이다. 이 책은 역사를 쓴 글이지만, 세부 주제는 초상화이기 때문에 관련 이미지 선정에 세심하게 배려하였다. 역사적 비중이 높은 인물임에도 실제 초상화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훌륭한 초상화였지만 역사적으로 크게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여 수준 높은 초상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초상화 주인공의 삶에서 역사적 의미를 최대한 찾아내 책에 실었다. 또 초상화를 실제로 제작한 화가들의 이야기까지 실어 그 초상화가 그려진 배경이 확실하게 독자에게 전달되도록 하였다. 이 책은 15세기 후반 피렌체 도시국가를 지배했던 메디치가의 쥴리아노 데 메디치와 시모네타 베스푸치 초상화, 이 초상화를 남긴 대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로부터 시작한다. 이어 프랑스혁명 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유럽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폐렴으로 사망하는 그들의 장녀 마리 테레즈 샤를롯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 시기에 해당하는 당대 주요 인물들을 그린 인물화, 초상화도 망라하고 있다. 천일의 앤으로 잘 알려진 앤 볼린, 헨리 8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 제인 시무어 등의 이야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던 엘리자베스 1세 관련 이야기, 당시 역사를 이끌어 갔던 남자들의 연인, 총희 등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역사책이면서 그림에 대한 책이다. 초상화를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개인사적으로, 그린 화가의 화풍과 관점까지 설명함으로써 독자를 그림 속 인물을 넘어 역사의 한 가운데를 사는 것 같은 생생함으로 이끌어준다. 그저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닌 한 시대의 역사 배경 속 슬픔, 기쁨, 안타까움, 놀라움 등을 저자는 담담한 문체로 끌어내준다. 이 책에는 역사와 초상화라는 두 가지 주제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탄탄한 콘텐츠가 아름다운 도판과 함께 실려 있다. 덕분에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독자에게 동시에 제공된다. 저자는 영문학자이지만 미국, 캐나다에서 미술사, 미디어아트를 공부하였고 한국 미술협회 이사도 역임한 미술계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술에 조예가 깊은 인문학자로서 역사 혹은 미술로 치우침 없는 유익한 내용을 이 책에 풍성하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
김인철
출판
양문출판사
출판일
2023.01.10

 
영국과 프랑스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 투영된 역사 이야기. 
역사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참 좋다.
머릿속 상상으로 그려보는 것과는 현실감이 다르다.
 
엘리자베스 1세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1536년, 3살에 어머니(앤 볼린)가 아버지에 의해 참수되고, 새어머니를 맞았다. 이어 태어 난 왕위 계승권을 두고 경쟁 관계에 있는 공주와 왕자, 새어머니의 견제를 받으며 사는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1547년, 15세에 아버지(헨리 8세) 마저 사망.
1548년, 16살. 새어머니 캐서린 파의 새 남편(토마스 시무어)의 성적 희롱을 겪고 외국으로 보내짐.
1553년, 이복 동생 에드워드 사망 후 제인 그레이, 메리 1세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의 소용돌이 속에 힘들게 살아남으며 불면증까지 겪음.
1558년, 26세.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살아낸 덕분에 마침내 여왕이 됨. 1603년 사망하기까지 44년을 다스리며 영국의 국격을 높임.
   
공주였다가 하루 아침에 하녀로, 그것도 경쟁자의 하녀로 전락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당사자에게 너무 가혹해 보인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을까. 
왕위 계승의 경쟁자로 미워하고 견제하던 사람이었지만
본인의 자손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후계자로 지명하는 사례들을 보면
그들 왕족들의 관계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어쨌든 당시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은 절대 왕정이 위기로 치닫게 되는 중대한 원인이었던 재정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화려한 로코코 문화에 빠져 있었다. 권력층 전원이 무절제했던 사치의 예는 귀족 부인들의 예술품 수집과 예술 후원 등이었는데 그것들은 후대에 큰 이익이 되고 현재의 프랑스를 나타내는 문화재들이 되었다. p.218

한 시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지도층의 사치와 낭비가
다른 시대 백성들이 누리는 이익으로 연결된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미모와 재능으로 화가의 모델과 유력자의 정부를 거쳐 
귀족의 부인이 되고, 넬슨 제독과 진실한 연인 관계가 되었지만 
결국엔 과도한 빚으로 도피생활을 하다 49세에 요절한 해밀턴 부인, 
엠마 하트의 이야기에서 애잔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이 휘두르던 칼에 희생된 
초상화 속 젊은 선각자들의 모습을 보며
역사와 운명의 물결을 연약한 개인의 노력으로 맞서는 일이란
얼마나 엄중한지 생각하게 된다.
 
정말 많은 초상화와 그림들이 남아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치적 홍보 수단으로 제작되었기에 수많은 복제품을 만들어 배포했으며,
때로는 외국으로까지 보내졌다는 것이다.
특정 그림은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로 보유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했다. 
 
궁정화가가 되는 것은 화가에게 영예와 부를 가져다주는 멋진 일이었지만
때로는 자신을 고용한 사람과 함께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고,
그림 실력과 홍보 실력이 남달랐던 화가는
정권을 잡은 적대적 상대방에게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들을 다루다 보니 
초상화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정작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한 이야기는 지나치게 압축되어 
전후 문맥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화가 이야기에 중요하게 소개되는 그림도 많이 실려있지 못해 
웹 검색으로 찾아보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책이 두꺼워지거나 여러 권으로 나누어지더라도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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