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의 새로운 기준
대프니 밀러의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준 것』은 의학서가 아니라, 한 의사가 토양과 농장, 그리고 사람의 몸을 함께 바라보며 배운 이야기를 쓴 책입니다. 병원 진료실이 아닌 농장과 목초지, 텃밭에서 얻은 통찰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지낸 건강의 전제를 다시 묻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건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몸이 아니라 환경과 관계의 문제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영양제를 믿게 되었을까?
책의 초반부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칼슘 보충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음식 속 칼슘과 알약 형태의 칼슘은 같은 물질임에도 전혀 다른 대사 경로를 가진다는 점, 그리고 과도한 보충이 오히려 아연과 철분의 결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설명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습니다.
저자는 여러 연구를 인용하며, 지금까지의 결과를 종합해 보충제가 건강을 유의미하게 개선하거나 질병을 예방한다는 근거는 매우 약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영양제를 섭취하는 것이 ‘무언가를 더 먹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것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토양의 불균형은 왜 사람의 몸과 닮아 있을까?
책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비유는 토양과 인체의 유사성입니다.
토양에 인산 비료를 과도하게 주면 작물에서 아연과 철이 결핍되듯, 사람의 몸 역시 특정 영양소를 과잉 섭취할 경우 다른 필수 영양소가 부족해진다는 점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완벽한 틸트(tilth)’를 위한 다섯 단계를 제안했습니다.
신선한 농산물에 투자하고, 생물 다양성을 먹으며, 흙과 균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익균을 죽이지 않으며, 농장 사랑에 참여하라는 조언은 단순히 식단 관리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제안으로 느껴졌습니다.
왜 자연 속에서 자란 소와 아이들은 더 건강할까?
미주리 주의 로킹 H 목장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생생한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관행 축산을 중단하고 ‘들소 스타일’의 목축으로 전환한 뒤, 소와 흙, 물이 함께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방식의 전환이 가져온 결과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토착 균류와 박테리아에 노출된 개체가 더 건강한 면역 체계를 갖추게 된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가 지나치게 깨끗함을 추구해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흙과 미생물, 심지어 기생충까지도 대부분은 면역력을 키우고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은 다소 불편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왜 우리를 병들게 할까?
양계농장 사례를 통해 설명되는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개념도 인상 깊었습니다.
짧고 강한 스트레스보다, 낮은 강도의 만성 스트레스가 더 치명적이라는 설명이 현대인의 삶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듯했습니다.
자연방사 환경에서 닭의 생산성이 회복되는 사례, 중·장년층의 운동과 명상이 뇌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연구는 인간의 삶 역시 회복 가능한 가소성 위에 놓여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농사는 왜 최고의 예방의학일까?
도시 텃밭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텃밭 농사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혈당 조절, 우울증 감소, 치매 예방까지 연결된다는 연구 결과가 놀랍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건강하던 노인이 텃밭 일을 그만두면 12개월 안에 건강이 급속히 나빠진다”는 문장을 읽으며, 움직임·관계·돌봄이 동시에 사라질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의사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땅이 의사에게 가르쳐준 것』은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가 너무 오래 자연과 분리된 채 건강을 정의해 왔다는 사실을 조용히 짚어주는 책에 가깝습니다.
농사를 잘 짓는 비결이 농산물이 아니라 땅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데 있듯,
우리의 건강 역시 몸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삶의 방식 전체를 함께 바라볼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오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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