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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돈을 얼마나 버는가 보다, 어떻게 쓰는가를 묻는 책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지금껏 제가 읽어온 경제·사회 관련 책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 책입니다. 저자 스스로도 머리말에서 “지금껏 써 왔던 어떤 글들보다 훌륭하고, 아마 앞으로 쓸 글들 중에서도 최고일 것”이라 밝힌 이 책은, 그 자평이 결코 과하지 않다고 느껴질 만큼 단단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 글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간디가 자신의 삶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으로 이 책을 꼽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러스킨의 사유가 개인의 독서 경험을 넘어 삶의 태도 자체를 흔들 수 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부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러스킨은 이 책의 첫 목적을 ‘부에 대한 정확하고 단단한 정의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가 말하는 부는 단순히 화폐의 축적이 아니라, 유익한 영향을 끼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소유한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 정의를 읽으며, 그동안 ‘돈이 많음 = 부유함’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해 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자본을 다룰 역량이 부족해 자신이 가진 돈을 다시 자본 증식에만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어도 실제로는 부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부는 소유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어떻게 쓰고 어떤 방향으로 흘려보내는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왜 러스킨은 ‘득실의 균형’이 아니라 ‘정의의 균형’을 말했을까?

러스킨은 인간을 향한 조물주의 의도가 ‘득실의 균형’이 아니라 ‘정의의 균형’을 추구하는 삶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읽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손익 계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노동의 가치와 임금에 대해서도 매우 급진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수는 그 일을 원하는 사람의 수와 무관해야 하며, 무능한 노동자가 값싼 임금으로 유능한 노동자의 자리를 빼앗는 구조는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경쟁을 미덕처럼 떠받드는 현대 사회를 떠올리게 하며, 과연 우리가 ‘공정’이라고 믿어온 많은 제도들이 사실은 파괴적인 균형 위에 서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상인은 왜 존경받지 못했을까, 그리고 새로운 상업의 가능성

러스킨은 상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날카롭게 메스를 댑니다. 상인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인식, 그리고 실제로 그런 모습이 반복되어 온 역사 속에서 상업은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상인의 직분을 ‘이윤 추구’가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다시 정의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단순히 윤리적인 훈계라기보다는 상업의 본질을 되묻는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순정품을 공급하는 것. 너무나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더 낯설게 느껴지는 기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러스킨의 사유는 ‘가치’의 문제로 깊어집니다. 그는 물건의 가치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고 사용하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생명을 살리고 북돋는 방향으로 쓰이지 않는 물건은 아무리 비싸도 무가치하거나 유해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히 “이 세상 수요의 75%는 환상과 이상, 희망과 애착에서 비롯된다”는 대목에서는,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돈지갑을 단속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상상력과 감정을 단속해야 한다는 말이, 다소 불편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돈을 얼마나 버는가 보다, 무엇을 위해 쓰는가를 묻는 책

이 책을 덮으며 가장 강하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소비하고 있는가?” 러스킨은 경제학의 최종 목적이 돈을 많이 버는 데 있지 않고, 고결한 소비를 통해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빈곤과 불행이 사라지지 않는 현대 사회의 병인을, 놀라울 만큼 명쾌하게 짚어내는 통찰로 느껴졌습니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먼저 묻는 태도. 득실의 계산보다 정의의 균형을 생각하라는 러스킨의 목소리는, 오래된 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사회를 향해 여전히 강력하게 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읽어야 할 고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단순한 경제 비평서라기보다, 삶의 태도와 사회의 방향을 함께 묻는 책 같습니다. 부를 쥐고 놓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부를 천하게 쓰는 것이 문제라는 러스킨의 말은 특히 오래 곱씹게 됩니다. 힘 있는 자의 팔을 부러뜨리기보다, 그 힘을 좋은 일에 쓰도록 가르치자는 그의 제안 역시, 갈등과 분열이 심화된 오늘날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읽고 나면 생각의 기준선이 조금은 달라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제목이, 단지 미래 세대를 향한 배려가 아니라, 지금 이 책을 집어 드는 우리 모두를 향한 호소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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