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암의 삶과 공부를 다시 생각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늘 ‘기이한 문장가’, ‘파격적인 사상가’로 기억된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 박지원』은 우리가 알고 있던 연암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결을 보여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위대한 사상가의 업적을 정리한 평전이 아니라, 아들(차남 박종채)이 기억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조심스럽게 불러낸 기록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다 보면 연암은 더 이상 교과서 속 인물이 아니라, 사색을 즐기고, 사람을 관찰하며,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이치를 길어 올리던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박지원이라는 이름보다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더 오래 남긴 책이었던 것 같다.
책을 깊이 읽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했을까?
연암이 제자들에게 남긴 독서에 대한 말은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는 책을 부지런히 읽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색 없이 시험용 독서 습관에 갇혀 있는 태도를 경계했다.
“매일 경서 한 장과 주자의 강목 한 단을 빨리 읽거나 외우려 하지 말고, 자세히 음미하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토론 분변함이 좋겠어.” (41쪽)
이 대목을 읽으며, 저 역시 책을 얼마나 ‘빨리 소비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연암에게 독서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사유의 깊이를 키우는 과정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많이 읽는 것보다, 오래 생각하는 읽기를 중요하게 여긴 태도가 오히려 오늘날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연암은 왜 그렇게 자주 멍하니 사물을 바라보았을까?
아들의 기억 속 연암은 종종 아무 말 없이 사물을 응시하던 사람으로 등장한다. 풀과 꽃, 벌레 같은 미미한 존재들 앞에서도 그는 멈춰 서서 오래 바라보았다고 한다.
“지극히 미미한 사물들… 이들에게서 하늘의 묘한 이치를 엿볼 수 있다.” (44쪽)
이 장면을 읽으며, 연암의 사유는 책상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연과 일상을 관찰하며 사유했고, 떠오른 생각을 잔 글씨로 적어두며 축적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년에 이르러 그 기록들을 다시 꺼내 들었을 때는 눈이 어두워 알아볼 수 없었다는 대목에서 묘한 쓸쓸함도 전해졌다. 사유의 흔적은 남았지만, 다시 읽히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린 시간들이 떠올랐다.
연암의 사람 다루는 방식은 무엇이 달랐을까?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주정을 부리던 하인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연암은 그를 벌주기보다 노동을 통해 마음을 붙들게 했다.
“일에 마음을 붙여 자연스레 마음이 단속되기를 바라서였지요.” (94쪽)
이 일화를 읽으며 연암의 통찰은 사람의 본성을 단순히 선악으로 재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상 깊게 느껴졌다. 그는 문제 행동의 원인을 ‘타고난 악함’이 아니라, 마음을 붙일 대상이 없었던 상태로 보았다. 그리고 그 해결책 역시 체벌이 아니라,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과 일상의 리듬이었다.
연암이 벼슬보다 더 기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성부 판관에 임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임금의 총애를 기대했지만 연암은 오히려 제릉령으로 옮겨간 것을 기뻐했다고 한다.
“한가로운 곳에서 마음대로 독서하고 저술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셨다.” (75쪽)
이 대목에서 연암이 추구한 삶의 기준은 분명해 보였다. 출세나 명성보다는 사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더 중요했던 사람. 그래서인지 그의 삶은 늘 세속적 성공과는 조금 비껴나 있었던 것 같다.
연암의 글쓰기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연암의 글쓰기 기준은 명확하고도 단호했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한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186쪽)
이 말은 글이 단순히 무난하고 정중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글은 독자의 마음을 건드려야 하고, 생각을 흔들어야 한다는 믿음. 이 기준은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마음에 새겨야 할 질문인 것 같다.
느리게 읽고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연암은 스스로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말하며, 하루에 한 권도 읽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필요할 때면 읽은 것들이 자연스레 떠올라 글 속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종국에는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188쪽)
이 고백을 통해, 기억이란 단순 저장이 아니라 사유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임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빨리 잊는다고 해서 헛된 독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위안도 함께 전해졌다.
연암이 끝까지 믿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관상, 점, 풍수 같은 잡술을 일절 믿지 않았다는 연암의 말은 이 책의 마지막을 단단하게 붙잡는다.
“사람은 모름지기 선을 추구함으로써 스스로 그 운명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261쪽)
결국 연암이 믿었던 것은 운이나 예언이 아니라, 마음과 태도, 그리고 삶의 방향이었던 것 같다. 이 믿음은 시대를 넘어 지금 읽어도 조금도 낡아 보이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은 위대한 사상가의 업적을 찬양하는 책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관찰하고, 사람을 대하며 살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기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연암의 문장보다도, 그의 삶의 태도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 덕분에, 연암 박지원은 더 멀어지지 않고 오히려 한 발 가까이 다가온 인물로 느껴졌다. 이 책은 연암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독자에게도 다시 한번 생각할 거리를 건네주는 책인 것 같다.
'Reviews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 독서 리뷰 (0) | 2025.12.25 |
|---|---|
| 📚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독서 리뷰 (0) | 2025.12.18 |
|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남도답사 일번지 독서 리뷰 (0) | 2025.12.12 |
| 📚 이오덕의 『나무처럼 산처럼 2』 독서 리뷰 (3) | 2025.12.10 |
| 📚 이근후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독서 리뷰 (5) | 2025.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