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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부분)

 

문태준의 ‘고요한 강인함’을 배우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햇살이 스며들면 잠시 따뜻해지지만,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 합니다. 시인 문태준의 산문집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마음의 숲, 2019)는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조용히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꾸며진 위로 대신, 살아 있는 고요함으로 사람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문장들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1. 고독은 왜 성장의 시간일까?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이었습니다.

“고독은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위대하며 견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 그러나 그때가 바로 고독이 자라나는 시간입니다.” (p.109)

우리는 흔히 외로움을 피해야 할 감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릴케는 고독을 ‘자라나는 시간’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아무와도 연결되지 않은 듯한 그 순간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는 창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문태준은 영화 <경주> 속 한 장면을 불러왔습니다.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사람의 자취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하늘이 맑아지듯, 고독은 마음을 맑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마음의 근육은 어떻게 단련될까?

문태준은 말합니다.

“키워야 할 근육은 마음의 근육이다. 마음이라는 기관에 습관이라는 근육을 만드는 것이 훨씬 유의미하다.” (p.74)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연구처럼, 행복의 네 가지 열쇠가 ‘과일, 자연, 햇빛, 잠’이라면, 시인은 그 위에 ‘걷기’라는 습관을 얹습니다. 하루만 보 이상 걷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닐며,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었다는 대목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행복은 거창한 도착지가 아니라, 몸이 움직이는 리듬 속에서 만들어지는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근육도 결국 반복된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3. 자연과 함께 사는 단순함은 어떤 힘을 줄까?

책에는 티베트 수행자들의 삶이 소개됩니다.

“단순하게, 자연과 더불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 (p.79)

단순함에서 평화를 배우고, 자연 속에서 자신을 회복하며, 고독 속에서 내면을 발견하고, 새로움을 통해 다시 세상과 연결됩니다.

 

일본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의 말도 인용했습니다.

“씨앗이 자라는 속도를 넘어선 곳에서는 공포만이 자랄 뿐 안심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성장하려 하면 불안이 커집니다. 오히려 자연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단단하게 자라는 것이 진짜 성장 같았습니다.

4. ‘빈 배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규보의 글귀가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나는 빈 배와 같아, 사람에게 밀침을 받더라도 불만이 없으며,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닥쳐야만 움직인다.”

‘빈 배’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문태준이 말하는 고요한 강인함, 그것은 아마 이런 태도와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평가나 사람의 시선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내 안의 중심을 지키는 힘 말입니다.

 

5. 마음 챙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알아차리기

책의 후반부에서 시인은 마음 챙김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마음 챙김은“마음 챙김은 내 마음에 무슨 생각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이다. 고통스럽거나 유익하지 않은 생각들이 일어나면 그러한 생각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를 물리치는 것이다.” (p.263)

마음 챙김이란 생각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일’ 같습니다. 그 단순한 자각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성철 스님의 절제된 식단과 수행 습관이 소개되는 장면(새벽 3시의 백팔배, 냉수마찰, 어린아이 밥공기 정도의 식사)은, 절제와 집중이 얼마나 큰 자유를 주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과하지 않은 삶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여백이 생겨나는 듯했습니다.

 

6. 결국,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처럼

책을 덮으며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라는 제목이 새삼 다르게 들렸습니다.
삶에서 바람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 바람 속에서 휘청이더라도 쓰러지지 않는 유연함, 그것이 시인이 말하는 삶의 태도 같습니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지만, 바람과 함께 흔들리면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무처럼 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고요하고 단단한 균형이야말로, 문태준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의 풍경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는 일상의 소음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되찾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고독을 견디는 법, 마음을 단련하는 법, 그리고 자연 속에서 단순하게 사는 법을 잔잔하게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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