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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독서]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 이디스 워턴

이탈리아의 빌라와 그 정원
서양 정원의 뿌리가 되는 이탈리아 정원의 ‘영혼과 형식’ 『기쁨의 집』(1905),『순수의 시대』(1920) 등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 이디스 워턴이 잡지사의 의뢰를 받아 이탈리아 현지 취재여행을 다녀와 쓴 고품격 정원 안내서. 여행기이자 에세이, 정원 해설서이자 조경 분석서인 이 책은 우리를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로 되돌려놓고, 이탈리아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정원으로 옮겨놓는다. “유럽의 정원을 볼 때 그냥 ‘좋다,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거기에 들어간 엄청난 정성과 역사적·이론적 바탕까지 조금 알고 봐주면 좋겠습니다. 그 아름다운 공간을 설계하고 만들어간 과정에 투영된 정원에 대한 철학을 엿보고 싶어집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이 훌륭한 고전을 우리말로 옮겨준 점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_ 한동일, 『라틴어 수업』 저자
저자
이디스 워튼
출판
글항아리
출판일
2023.11.24




이탈리아에 있는 상류층의 전원 별장인 빌라와 그 빌라에 딸린 정원에 대한 책이다. 
종이 포장을 벗기니 진한 초록으로 참 아름답게 장정된 책의 모습이 나타나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소설가가 쓴 글이라는 점과 서양 정원에 관한 최고의 고전 중 하나라는 소개글에 꽂혀 읽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의 명성에 비해 글을 잘 썼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원이나 건축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추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120여 년 전에 쓰인 원문이 오늘의 정서와 잘 맞지 않거나 너무 직역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언제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빌라와 정원을 만들었는지 사실을 조사하여 나열한 것 같아 여러 지역의 여러 빌라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들리고 지루한 느낌이다. 
책 속에서 저자가 자주 말하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건축이나 정원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자료가 되겠지만 아름다운 정원과 건축물을 지면을 통해 즐겨보려는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했으면 좋겠다. 

이탈리아의 정원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지 않은 이유를 너무 뜨겁고 건조한 기후 탓에 꽃을 키우기가 어려운 데서 찾았는데 단순하고 원초적인 이유라 뜻밖이다. 꽃 대신 대리석, 물, 다년생 식물을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 제약이 오히려 영구적인 형태의 아름다운 정원을 낳게 했다는 것에서 교훈을 얻었다. 

빌라의 형태나 정원의 변화에 대한 역사적 내용이 많아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글의 많은 부분에서 나오는 세부적인 묘사를 이해하는 데는 책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사진이 도움이 되었다. 빌라와 정원 사진이 각 장의 끝 부분에 한꺼번에 모여 있는데 해당 내용을 설명하는 글 옆에 바로 이어 있으면 좀 더 편리하겠다.

정원이나 건축과 관련된 전문용어가 자주 나와 책 읽기를 방해하지만 페이지 아래에 친절한 설명을 주석으로 달아놓아 도움이 되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벽면을  파내고 조각 등을 배치한 공간을 ‘그로토’라고 하며 ‘동굴’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뒤마의 소설 <춘희>의 ‘춘 ‘이 봄이 아니라 동백나무 ’ 춘 ‘인데, 동아시아 원산의 동백나무가 18세기 유럽에 전파되어 정원수로 큰 인기를 얻은 것과 관계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국가공인 도박시설인 카지노(casino)의 어원이 이탈리아어 카사(casa)에 축소형 어미가 붙은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 귀족의 사교 오락장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 같은 것들이다.

방이 하나인 집과 정원이 하나뿐인 집을 비교했다. 방을 하나만 갖고 있는 집이 아름다울 수 없듯이 정원이 하나인 집은 정원을 여럿 갖춘 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물을 가운데 배치하고 구석구석에 다른 특징을 가진 정원을 배치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하다.

프랑스에서는 정원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토목공사를 하는 노력을 들여 넓은 평지를 확보하고 정원을 꾸몄지만, 이탈리아는 자연의 경사를 이용하여 테라스식 정원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정원 양식이 자연친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우리 정서에 잘 맞을 것 같은데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기하학적인 정원을 만드는 것이나 자연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나 다 인공적인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는 논쟁이 있어왔다는 것도 재미있다.

정원과 빌라를 그린 수채화도 여럿 들어있어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수채화 양식이 요즘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하지 않고 유화처럼 불투명한 느낌의 것이어서 더 그랬다.  
 
 

인공적 자연인 것과 직설적 관습인 것 사이에서 사람들의 공감이 나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양식은 양식일 뿐이고, 하나는 다른 하나만큼이나 인공적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제 각각은 진실성(sincerity)이라는 윤리적 기준이 아니라 그 자체의 미학적 가치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시점이 왔다.(256)

 
 

이런 이탈리아 정원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스프레차투라 sprezatura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스프레차투라는 어려운 일을 마치 쉬운 일처럼 세련되고 우아하게 다루는 것을 말한다. 무심한 듯 세심하게, 손댄 듯 안 댄 듯, 우연히 그렇게 된 것 같지만 실은 아주 세심하게 만든 기교 아닌 기교, 인위 아닌 인위, 자연 아닌 자연 등. 이런 감수성이 정원에도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워턴이 하려는 말을 딱 한 마디로 한다면 그렇다고 생각된다.(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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