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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독서] 1417년, 근대의 탄생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1417년, 근대의 탄생』. 1417년 겨울, 30대 후반의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는 남부 독일의 한 수도원의 서가에서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당시로써는 가장 위험한 사상들이 숨어 있는 장시로, 저자 그린블랫은 이 책의 발견이 기독교의 교리에 의해서 인간의 사상과 자유가 속박 당했던 ‘암흑’의 중세를 마감하고, ‘재생’의 르네상스 태동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기원전 4세기의 에피쿠로스와 기원전 1세기의 루크레티우스, 15세기의 포조 브라촐리니의 불가사의한 만남을 섬세하게 추적함으로써 르네상스의 태동과 전개를 역동적으로 규명한다. 그린블랫은 르네상스가 근대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되, 르네상스를 일방적으로 찬양하지 않고 당대의 퇴폐와 오염, 극한 종교와 사회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단순한 근대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저자
스티븐 그린블랫
출판
까치
출판일
2013.05.15

 

 

1803년, '질량 보존의 법칙', '정비례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돌턴에 의해 만들어져, 오늘날 원자론의 바탕이 된 원자설과 거의 동일한 생각이 기원전에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이었다니 놀랍다. 그 철학이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에피쿠로스 철학은 교회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되고 매장된다. 그 바람에 1803년, 원자론이 재발견되기까지 천년이 넘는 잃어버린 시간을 가져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교회의 부패로 권위가 붕괴되고 종교개혁을 향해 달려가던 1417년, 있어서는 안 될 교회의 수도원에 우연히 남아있었던 그 책이 필사되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었다니 참으로 극적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의 전개에 덧붙여 새로운 깨달음과 통찰을 주는 부분도 많았는데, 일부를 정리해 본다.

 

 

일정 기간만이라도 우연히 살아남아 번식하는 데 성공한 종은 버티고 그렇지 못한 종은 금세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 종으로서의 우리 인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 그 위로 매일 타오르는 태양도 -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영원불멸한 것은 오직 원자뿐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인류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죽음을 극복하고 우리 자신도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도 덧없는 것임을 인정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썼다. (13)

 

루크레티우스는 인간도 별이나 바다를 이루는 것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해

자연질서의 일부임을 이해하고 마음껏 실험을 하며

당연하게 수용되던 교회의 권위에 과감하게 의의를 제기했다.

 

에피쿠로스 사상의 핵심은 지금껏 존재해 온 모든 것과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은 파괴할 수 없는 입자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작고 그 수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스인은 이 보이지 않는 입자들을 더 이상 나누어 구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원자 atom'라고 불렀다.
원자들은 부단히 움직이며 서로 충돌하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서로 결합하여 더 큰 물체를 이루기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큰 물체는 해와 달인데, 인간이나 물가의 날벌레, 모래알과 마찬가지로 모두 원자로 구성... 물질에는 상위 범주도 없으며 원자 간의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체도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며... 단순히 자연질서의 한 부분(94)

 

현대의 원자 개념과 너무나 유사한 것이 놀랍고, 원자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여 신성하게 생각하던 천체 현상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파악하는데 이르렀다니 더욱 놀랍다. 

쾌락주의자로 알아, 인생을 마음대로 방탕하게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던 에피쿠로스가 아테네에 있는 외딴 정원에서 치즈, 빵, 물로 이루어진 간단한 식사를 하며 조용히 살았다니 뜻밖이다. 게다가 생의 마지막에는 방광 폐색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쾌락을 되새기며 마음의 평안을 유지했다는 것과, 추종자 필로데모스가 "신중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는, 용감하고 온화하고 관대하게 살지 않고는, 벗을 사귀고 인류를 사랑하지 않고는 쾌락을 누리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잘못된 선입견이 더욱 민망하다. 진정한 쾌락이 무엇이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를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기원전 300년 무렵부터 과학자와 시인을 비롯한 각 분야의 선도적인 학자를 초빙해 도서관과 종신계약을 맺고, 상당한 보수와 함께 면세 혜택과 공짜 숙식을 제공하여 유클리드 기하학, 아르키메데스의 원주율 추정, 1년의 길이를 365와 4분의 1로 추론, 서쪽으로 항해해서 인도에 다다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측하는 성과를 내고, 엄청난 돈을 들여 학자 약 70 명에게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게 하여 <70인역 성서>가 탄생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공과를 판단하지는 못하겠지만, 국가의 부를 인류 문명의 발전에 사용한 것은 개인의 사후를 위한 무덤 건설에 사용하거나 주변 약소국을 침략하는 데 사용하는 것에 비해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교회에 의해 매장되었지만, 교회의 수도원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사본이 우연이 보관되어 있었고, 9세기의 어느 날 한 수도사가 베끼기 시작했으며, 그 필사본이 약 50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 마침내 1417년 피렌체의 인문주의자 포조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있기 100여 년 전에 교황청 관료였던 포조 브라촐리니의 작품 ⟪위선자 논박⟫에 나오는 대화들에서 오늘날 종교인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타락한 종교의 모습은 비슷한가 보다.

 

어째서 이처럼 독실한 종교인들이 그 모범이 될 만한 태도로 가만히 자기 방에 머물며 금식하고 기도에 헌신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인가? 왜냐하면 그 눈에 띄는 경건, 겸양, 세속적인 것에 대한 경멸이 실제로는 탐욕, 나태, 야망을 가리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화에 참여한 등장인물들도 정말로 선량하고 성실한 수도사들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수도사들은 극히 드물며, 그들조차도 결국 그들의 사명 안에 실질적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는 파멸적인 타락의 길로 서서히 빠져들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186)

 

포조 브라촐리니가 말하는 위선자의 징표는 오늘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과도하게 정결한 삶을 사노라고 드러내는 자. 맨발로 거리를 다니며 더러운 얼굴과 누더기 옷을 내보이는 자. 대중 앞에서 공공연히 돈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는 자. 항상 입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달고 다니는 자. 선하다고 칭해지기를 원하나 정작 어떤 특별한 선행도 하지 않는 자. 자신의 소원을 충족시키고자 여자들을 끌어들이는 자. 수도원 밖을 이곳저곳 쏘다니면서 명예와 명성을 구하는 자. 금식을 비롯한 각종 금욕적 수행의 현장을 남에게 표 내는 자. 자신을 위해서 다른 이들을 조종해 뭔가를 얻고자 꼬드기는 자. 신뢰로 주어진 것을 받았다고 인정하거나 돌려주기를 거절하는 자. (186)

 

포조 브라촐리니는 "모든 세속적인 걱정거리, 공허한 집착, 짜증, 일상적 계획은 내던져버리고 자유와 진정한 고요, 안전이 함께하는 청빈이라는 안식처로 도피하자"라고 결심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며 "내 꿈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앞으로 몇 년간 열심히 일해서 남은 생애를 누릴 수 있을 여유를 얻는 것"으로 타협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몇 년간"이라고 생각했던 기간은 50년이라는 그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이 되고 말았으며, 그래서 꿈과 괴리된 긴긴 기간을 집착에 가까운 책에 대한 열정으로 견뎌내었다고 하는데, 우리 대부분의 인생여정과 너무 닮았다. 

종교개혁 전 교회의 부패상은 참으로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다.

사후에 경험해야 할 끔찍한 지옥불의 고통으로부터 면제해 준다는 전대사를 받고자 로마의 주요 성당들로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는데, 애초에 100년에 1번꼴로 할 계획이었지만 수요가 대단히 많고 수입이 막대하다 보니 점점 주기가 짧아져 처음에는 50년, 33년, 그리고 25년에 1번 꼴로 행사가 열리게 되었고, 포조가 로마에 도착하기 바로 전인 1400년에는 불과 10년 전에 마지막 성년 행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대사를 내렸다. 더 많은 수입을 거두기 위해서 동원한 다양한 방법은...(199)

포조는 바덴의 온천장에서 벌거벗은 채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의 활달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닥쳐올 재앙에 대한 공포에 짓눌린 채로 끝없이 고통스러워하며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비참한 운명을 맞으리라는 공포 때문에 우리는 그런 걱정을 결코 멈추지 못하고 항상 재물에 대한 갈망으로 허덕이면서 단 한순간도 영혼과 육신에 평온을 느끼지 못하지요." 그가 찾은 해결책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면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축제처럼 보냅니다.' 

 

인간의 자연적 욕구는 사실 단순하다. 쾌락을 증진하고 고통을 경감하는 것(244)

 

진정한 쾌락이 늘어나지 못하는 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망상 때문인데, 유한한 세계에서 가능한 그 이상을 얻으려는 과도한 욕망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 명쾌하다.

 

"내가 증인이다.(나는 그들과 함께 50년을 보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삶이 위험하고 불안하며 초조하고 많은 걱정으로 억눌려 있다고 호소하지 않는 자를 본 적이 없다." -포조가 73세부터 5년간 피렌체 총리로 봉직하는 동안 쓴 책 <인간 존재의 참혹함에 관하여> 중 명백히 이례적인 부와 안락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교황과 교회의 권력자들에 대해(270)

 

행복하고 완벽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 부럽기만 한, 성공한(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는 증언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인 것만 같지는 않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말이다.

<예스24>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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