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우리는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을까? 환경과 맥락에 따라 바뀌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들 우리는 왜 현재의 우리가 되었을까? 왜 이렇게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까? 20세기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유전자(본성)’ 또는 ‘경험(양육)’이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답했다. 그러나 유전자 또는 경험뿐 아니라 둘 사이를 이어주는 실질적인 요인이 있다면 어떨까? 이를 테면, 경험이 유전자가 하는 일에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쳐 ‘유전자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꾼다면? 즉 우리가 처한 환경과 맥락이 유전자 자체는 바꾸지 않으면서 유전자를 활성화하거나 침묵시킴으로써 우리 몸과 마음의 기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게다가 그렇게 유전자에 새겨진 경험이 후대로 대물림된다면? 생물학 분야의 최신 연구들은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 일들이 실제로 우리 몸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근거들을 속속 제시하고 있다. 콕 짚어 말하자면, ‘후성유전학’이 그 일을 해낸 장본인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발달·생물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피처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활동 중인 데이비드 무어가 ‘경이로울 정도로 성장하는’ 후성유전학의 연구와 통찰을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에 집대성했다. 이 책은 출간 당시 미국심리학회 ‘윌리엄 제임스 도서상’과 미국발달심리학회 ‘엘리너 매코비 도서상’을 수상하며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책은 후성유전학이 무엇인지,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며 그 학문이 앞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자세하게 톺아보는 한편, 후성유전학 중 특히 경험이 우리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행동 후성유전학’에 집중한다. 행동 후성유전학은 삶의 모든 면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는데,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이 새롭고 흥미진진한 학문 분야를 “친절하게” 소개하는 후성유전학 입문서로, 생물학에 관한 지식과 배경이 없는 독자들도 후성유전학에 담긴 혁명적 함의들을 알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

데이비드 무어

출판

아몬드

출판일

2023.09.18

 

 

 

알록달록한 책 표지의 무늬는 DNA 이중 나선 구조를 그린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DN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책 내용을 잘 나타내어 디자인하였다.

 

머리말과 추천사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작이 늘어지지 않아 긴박감이 느껴져 좋다.

426~539쪽에 걸친 방대한 후주가 있다. 

다 읽어보지는 않겠지만 믿음이 가고 든든하다.

 

심층탐구로 구분된 장들에서 자세한 생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좋다.

지은이는 심리학자인데 생물학자나 의사로 착각할 정도로 

유전과 인간의 여러 가지 질병에 관한 다양한 실험 논문을 소개했는데, 

철학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했던 심리학 연구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책 표지에 기록된 카피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이 책 내용에 대한 명쾌한 한 줄 정리라고 생각된다. 한 줄로 정리된 내용을 4부 23장에 걸쳐 자세히 풀어썼는데, 때로 중복되는 부분도 보이고 지루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생물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 또는 노화, 치매, 우울증이나 중독 현상 같은 인간의 여러 질병과 유전자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보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흥미로웠던 부분을 정리해 본다.

 

이것은 혁명일까

 

아메리카의 로어노크 식민지를 건설한 원정대가 사라져 버린 이유가 그들의 개인적인 특성과 그들이 견뎌야 했던 극심한 가뭄 상황 모두에 있는 것처럼 성인이 된 우리가 갖고 있는 개인적 특징도 본성(DNA)과 양육(환경) 모두의 결과이다.

 

앤젤리나 졸리의 유방을 절제하게 한 BRCA1 변이 유전자가 있어도 평생 유방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을 고려하면, 87%의 위험성을 추정해 절제 수술을 받은 것은 지나친 면이 있어 보인다.

 

교과서에는 유전자가 표현형을 결정한다고 나오지만 DNA 단독으로는 어떤 특징도 만들어지지 않으며, 항상 유전적 요인과 비유전적 요인이 상호작용해 표현형이 만들어진다. 

 

후성유전은 다양한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유전물질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방식이다.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어떤 환경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배아줄기세포가 다양한 기관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도 유전자를 켜고, 끄는 후생유전적 과정을 볼 수 있다. 

 

단백질은 염색체가 있는 핵 안이 아니라 세포질에서 만들어진다. 염색체의 서열정보(DNA)는 RNA로 전사되고 세포질에 있는 리보솜이 RNA를 번역하여 단백질을 만든다. 

 

DNA의 1.2% 만이 단백질 형성에 사용되는 부호화 부분이고 나머지에는 단백질 생성을 늘리거나 줄이는 활성인자나 억제인자가 달라붙는 자리가 있다. 유전자의 부호화 부위에도 의미 없어 보이는 정보들이 흩어져 있으며, 동일한 DNA라 하더라도 RNA 스플라이싱 과정에서 다양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로 조합될 수 있는데, 어떤 것이 선택될지는 맥락이 결정한다. 

 

이것은 동일한 사람의 다른 세포 유형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어 똑같은 유전자가 사람에 따라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정확하게 같은 DNA 분절로 어떤 세포에서는 칼슘을 조절하는 단백질을 만들고, 다른 세포에서는 신경호르몬을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인간도 유전자의 92~95%에서 선택적 스플라이싱이 일어난다.

 

실패 같은 역할을 하는 히스톤 분자에 감겨있는 유전자는 전사되지 않고 메틸화된 DNA도 전사되지 않는다. 반대로 히스톤이 아세틸화되면 활성화된다.

 

1996년 암양의 젖샘에서 채취한 성숙한 세포로 복제양 돌리를 만든 것을 통해, 성숙한 세포에도 개체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유전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클론도 DNA만 동일할 뿐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표현형은 눈에 띄게 다르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기본 개념들

 

여왕벌과 일벌은 유전자가 동일한 클론인데 먹이만 다르다. 먹이와 꿀벌의 유전체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표현형에 엄청난 차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포유류의 후성유전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에는 음식, 환경화학물질, 남용 약물, 운동, 특정 양육 행동 등이 있다.

 

유전자의 10% 이상이 하루주기 리듬에 맞춰 하루 중 특정시기에만 전사되므로, 하루주기 리듬이 교란되면 건강이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Kotada, S., & Sassone-Corsi, P.(2010) Nature Structural and Molecular Biology, 17. p1414-1421)

 

생후 첫 10일 동안 어미쥐가 핥아주고 털을 다듬어주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한 쥐는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GR 단백질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DNA 분절에 메틸화가 증가하여 유전자 발현이 줄고, GR단백질이 적게 만들어져 성장한 뒤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한다.

 

설치류 연구에 의하면 삶의 어느 시점에 한 경험이 이후 다른 시점에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한 경험이 우리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군소를 이용한 실험에서 단기 기억 과정에는 신경전달물질의 양만 증가했지만, 장기 기억에는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해야 해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 발현 과정 조절이 필요하므로 후성유전적 메커니즘이 작용함을 알게 되었다.

 

1953년, 헨리 몰레이슨의 심한 간질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해마를 제거하자 과거 기억은 유지되나 새로운 기억이 생성되지 않는 것을 발견하여, 새로운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뇌 영역(해마)과 기억의 저장에 관여하는 뇌 영역(대뇌피질)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생쥐에게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신경퇴행을 유발하고, 놀이기구가 있고 같이 놀 친구 쥐가 있는 것 같은 ‘질 좋은’ 환경을 제공하면 새로운 기억 형성이 촉진되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하였다.

 

“우리는 인지 자극 활동, 운동, 기타 신체활동으로 삶의 질을 더 높임으로써 정신을 명료하게 유지할 수 있다.”(238)

 

태아기에 산모의 영양결핍은 장기적으로 태아가 성장한 후 학습과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 엽산의 부족은 DNA 메틸화에 사용되는 메틸기 공급이 줄어서, 콜린 결핍은 메틸기를 공급하는 분자의 접근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모두 DNA 메틸화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아구티색 생쥐의 털색은 유전자에 의해 정해지는 표현형이 아니라 아구티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 것을 통해 만들어진다. 유전자 못지않게 유전자가 발현되거나 발현되지 않게 하는 환경조건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같다.

대물림의 의미와 메커니즘

 

1930년대 말,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되었지만 후성유전학적으로는 획득형질도 후손에게 대물림된다.

 

조부모가 성장기에 과식, 굶주림, 흡연 같은 것을 경험한 것이 손주들의 건강과 수명에 영향이 있다는 것이 연구됨. 그 과정은 유전체의 메틸화 등에 의한 생식세포를 통해서거나, 유전체 주변 물질 또는 교육 등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   

 숨은 의미 찾기  

 

“성숙한 상태에서 우리가 지니는 특징들을 유전이 결정하는 게 아니듯 후성유전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362)

 

암 사례의 적어도 90%는 생활방식이나 환경요인과 관련된다고 하니 놀랍다. 생각이나 태도가 건강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현재의 후성유전학 지식으로 의도적인 영향을 주어 암 같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니 아쉽다.

 

암, 우울증, 여러 정신질환, 노화, 치매, 중독 등에 관련된 다양한 연구사례

 

후성유전적 표지를 표적으로 개발 중인 약물들은 DNA 메틸화 또는 아세틸화를 조절하는 것인데 모든 DNA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하여 선별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생쥐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희망적인 결과들이 많아 고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