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빛깔로 단풍이 든 계수나무를 바라보며 붓을 들었습니다.
잎 하나하나에 스며든 색이 흔한 가을의 장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축적된 생의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연둣빛에서 황금색, 연분홍과 주황, 그리고 깊은 녹색까지 이어지는 색의 층위는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섬세한 색채의 서사였습니다.
이번 그림에서 그리고자 한 것은 단풍 그 자체라기보다,
계수나무 단풍이 품고 있는 시간의 감정이었습니다.
계수나무는 봄과 여름 동안 묵묵히 초록을 키우다가,
가을이 되어서 비로소 자신이 지나온 계절을 색으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계수나무의 단풍은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깊지만 과하지 않습니다.
마치 오래 살아온 사람이 마지막에 남기는 온화한 미소처럼.
하얀 여백 위에 놓인 계수나무의 잎들은 서로 겹치며 빛을 주고받습니다.
빛을 머금은 잎맥을 따라 색이 번질 때,
자연 풍경 그림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감정의 기록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늘 현재이지만,
그 안에는 지나간 계절과 앞으로 올 계절이 함께 존재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그림은 가을 풍경이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사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가을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지금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는가”
계수나무 단풍을 그리며 완성보다 변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초록이 사라졌다고 해서 잎이 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자신다운 색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단풍 그림, 가을 풍경 일러스트, 식물 그림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계수나무의 색 안에서 자신의 계절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
— 노자, 『도덕경』
계수나무의 단풍처럼, 우리 삶의 색도 각자의 속도로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눈에 띄지 않아도 된다 생각합니다.
조용히 물들어 가는 시간 끝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 그림이 그런 믿음을 조용히 건네는 한 장의 가을 편지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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