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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부분)

삶의 길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빙점』을 쓴 작가로 유명한 미우라 아야코의 『길은 여기에』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감정은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겸손함”이었습니다. 책 곳곳에 담긴 그녀의 투병과 회복, 그리고 믿음의 여정은 단지 한 작가의 인생 기록을 넘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연약함 속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제가 읽으며 마음에 남았던 문장과 생각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봅니다.

 

삶의 의지는 왜 이렇게 흔들리기 쉬운 걸까?

책의 초반에서 아야코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죽고 싶다는 것이 나의 강력한 소원이자 의지였을 텐데 끝내 죽지는 못했다. 지금 살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확실히 그것은 내 소원이자 의지일 텐데 왜 인간의 의지는 이토록 간단히 짓밟혀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무언가를 “강하게” 바라지만, 예상치 못한 작은 변수 하나에도 쉽게 방향을 잃곤 합니다. 빨래를 널어두었는데 갑자기 비가 오거나, 읽던 책이 너무 궁금한데 배가 아프거나, 막 외출하려는데 손님이 찾아오는 것처럼요.

아야코는 이런 평범한 일상의 방해마저 ‘자기 의지보다 더 큰 어떤 힘’이 끼어 있음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더 단단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억지로 바꾸기보다,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려는 태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

책에는 아야코가 인상 깊게 만났던 사람들이 가진 삶의 태도가 여러 사례로 등장합니다. 그중 두 사람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니시무라 히사조의 ‘3분의 1 원칙’

제과점을 운영하던 그는 수익을 이렇게 나누었다고 합니다.

  • 3분의 1은 남을 위해
  • 3분의 1은 운영 자금
  • 3분의 1은 생활비

수입을 철저히 자신만을 위해 쓰는 방식과는 정반대의 철학을 보여주는 이 부분이 꽤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한 기독교 정신을 넘어, ‘나눔이 생활의 기본 구조’가 되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백양사 이가라시 겐지의 기준 있는 선택

그가 다시 독립을 준비하며 세운 조건들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 일요일 예배에 지장 없을 것
  • 미쯔꼬시와의 신뢰를 해치지 않을 것
  • 자본이 많이 들지 않을 것
  • 거짓말이나 에누리가 필요 없는 일
  •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

단순한 ‘사업 기준’이 아니라 정직하게 살기 위한 삶의 원칙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남에게 이익이 되고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마지막 항목이 읽는 순간 마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이렇게까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훨씬 단단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어떤 마음에서 나왔을까?

아야코는 오랜 투병을 거치며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변했다고 말합니다. 책에는 이런 문장도 나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 필요한 것은 반드시 허락해 주신다. 허락하지 않는 것은 필요치 않다는 증거다.”

‘체념이나 포기의 감정’이 아닌, 오랜 고통을 거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평온함이 느껴졌습니다.
24세부터 37세까지 13년간 이어진 투병 생활—그 고통 속에서 아야코는 비로소 “안달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떤 신앙의 유무와는 별개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내려놓는 순간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이라는 형태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는 삶의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오랜 고통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가?

13년이라는 긴 투병 생활을 견뎌냈다는 사실은 책 전체를 통해 매우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아야코의 글은 그 고통을 지나온 사람이 가진 무게와 조심스러움을 담고 있어서, 가벼운 위로 문장보다 훨씬 더 깊게 남았습니다.

고통을 통해 그녀는:

  •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삶의 범위를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고
  •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 겸손해졌으며
  • 스스로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여기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많은 요소가 맞물린 결과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어떤 ‘길’을 보았을까?

『길은 여기에』는 우리에게 화려한 성공담이나 눈부신 감동을 약속하는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조용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삶의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된다”라고.

아야코의 삶을 따라가며 저는 여러 번 멈춰 서서 제 삶의 기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 어렵고 힘든 순간에 어디에서 힘을 얻는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책은 그런 질문을 차분하게 던져주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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