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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의 문장으로 들여다본 인연, 돈, 가족의 본질

김훈 작가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은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과 가족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쓴 회고록처럼 보이는데,
우리가 외면하거나 지나쳐왔던 주제인 돈, 부모, 인연, 종교, 자연 등을 작가 특유의 담담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들려준다.
 

세상 모든 인연 앞에서 침묵이 더 따뜻했던 순간들

김훈 작가의 책 『내 젊은 날의 숲』은 작가 특유의 짧고 간결한 문체로 된 문장이 정제되어 있다.
그는 삶의 본질을 문장 하나하나에 쥐어짜듯 써 내려간다.
그의 글에는 날카로움과 체념, 동시에 따뜻함이 공존한다.
말보다 침묵이, 가까이보단 멀찍이 있음이 더 편안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책 첫머리에서부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런 하나 마나 한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존재와 인연을 확인하느니보다는, 멀리 떨어져서 서로 잠자코 있는 편이 훨씬 더 쌍방에 편안할 것이었다.

그는 관계에 있어 말보다 거리가 중요할 때가 있음을 통찰했다.
우리가 흔히 ‘소통’이라는 미명 하에 주고받는 말들이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그 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 침묵으로 말하는 어머니의 생

작가는 아버지의 구속 이후, 어머니가 그를 ‘그 인간’이라 부르던 장면을 덤덤하게 회고한다.
그 호칭 하나에 담긴 혐오와 삶의 피로감,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불완전한 인연이 강하게 와닿았다.

“‘그 인간’ 또는 ‘그 사람’이라는 익명성에는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피로감이 쌓여 있었고…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작가는 특정 인물보다, 그 인물을 부르는 ‘호칭’에 집중함으로써 인간관계의 이면을 짚어내었다.
 

돈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문장, 냉정하고 철학적이다

책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는 부분은 단연 ‘돈’에 대한 통찰이다.
작가는 돈이 떨어졌을 때 비로소 돈의 실체와 그 위안의 정체를 직시하게 된다고 말한다.

“돈이 떨어져야 보이게 되는 돈의 실체는 사실상 돈이 아닌 것이어서, 돈은 명료하면서도 난해하다.”

돈을 단순한 경제 개념이 아닌 ‘생리’로 표현한 그의 문장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그리고 그 생리를 경험해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 통증을 통해서만 비로소 우리는 어떤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숲은 탯줄 없는 존재, 피의 인연으로부터의 해방

『내 젊은 날의 숲』에서 숲과 나무는 하나의 은유로 보인다.
탯줄이 아닌 씨앗으로, 피의 인연 없이 태어나 스스로 살아가는 나무는 인간의 고통과 다른 차원의 존재다.

“혈육이 없어서 인륜이 없고, 탯줄이 없어서 젖을 빨지 않는 것이 나무의 복이다.”

작가는 숲에서 인연 없는 평화, 의무 없는 자유를 본다.
노부부의 삶처럼 가벼워진 그림자를 닮은 숲의 존재는, 우리에게 인간관계에서 벗어난 평온함이 가능한지를 묻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버리고 남는 마지막 문장 하나

김훈 작가의 문장은 의식의 가장자리에서 살아남은 문장 같다.
하고 싶은 말을 버리고 또 버린 끝에 남는 마지막 한마디, 그것이 『내 젊은 날의 숲』의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무리

『내 젊은 날의 숲』은 단순한 회고록이나 교훈을 주는 산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살아낸 사람의 깊은 침묵과 통찰이 담긴, 묵직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김훈은 『내 젊은 날의 숲』에서 , 부모, 인연, 종교, 자연 등 우리가 외면하거나 지나쳐왔던 주제를 다시 꺼내어 묻는다.
가볍게 읽을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라 생각된다.

책 표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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