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오주석
- 출판
- 솔
- 출판일
- 2003.02.05
진실한 아름다움을 좇는 조선의 미학
옛 그림, 그 너머의 세계를 들여다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는 단순히 회화 작품을 해설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의 미의식, 철학, 역사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미술 감상이란 너무 ‘보기 좋은 것’을 찾는 행위로 여기진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보며,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말보다 ‘진실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림들을 마주하게 된 것도 개인적으로 큰 소득이었습니다.
1. 옛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 – 옛사람의 눈과 마음으로
책의 전반부는 옛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옛 그림은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이 한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입니다. 빠르게 훑어보는 현대식 감상에서 벗어나, 마치 누군가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듯, 느긋하고 집중해서 감상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특히 그림의 크기와 구조에 따라 감상 위치가 달라야 한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큰 그림은 멀리서, 작은 그림은 가까이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 옛 그림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읽듯이 보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인상 깊었던 예시가 김홍도의 풍속화첩입니다. 저자는 풍속화첩 속 ‘틀린 그림 찾기’를 소개하며,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풍자와 유머, 감각적 실험의 일환이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좌우가 바뀐 듯한 표현도 보이지만, 오히려 그런 특징이 진품의 증거가 된다고 하니 흥미로웠습니다.
2. 조선 회화에 담긴 ‘참된 아름다움’
이 책의 후반부에서 가장 강하게 와닿은 주제는 바로 ‘참된 아름다움’에 대한 조선 회화의 철학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널리 알려진 <이재 초상>에는 검버섯과 노인성 지방종까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채제공 초상>에서는 사팔뜨기조차 감추지 않고 묘사되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이 ‘예쁘게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참되게’ 그려주기를 원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습니다.
“옛 초상화는 아름다움을 그린 것이 아니라 ‘참’을 그렸다.”
이 정신은 일제강점기 이후 상업주의와 일본식 화풍에 밀려 점차 사라졌다고 합니다.
김은호가 그린 논개와 춘향 그림처럼 화가의 부인을 모델로 모든 인물을 예쁘게만 그린 초상화는, 그 인물의 진실한 삶을 반영하지 못한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3. 사진(寫眞), 참을 그린다
'사진'이라는 말의 본래 한자는 참진(眞)을 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차오른 진실한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는 설명이 특히 가슴 깊이 남았습니다.
빛의 방향, 음영 표현 같은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얼굴에 깃든 그 사람의 인생과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보다는 노년의 얼굴을 그리는 전통이 생겨났고, 왕의 초상은 '어진(御眞)'이라 불렸다고 했습니다.
4. 조선의 문화와 세계관 – 서양 중심주의를 벗어나
책은 또한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은 낯설고 외래적인 것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청와대’라는 명칭과 그 구조는 미국 백악관을 모방한 결과이며, 그에 반해 '경복궁'이라는 이름은 ‘군자는 큰 복을 받는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짚어냅니다.
한국 표준시가 일본 중심의 동경 135도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고,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 속 시간 개념마저도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 장교가 조선의 시골 초가집마다 책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는, 당시 조선이 비록 힘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얼마나 높은 수준의 문명국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5.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전통적 시선 – 음양오행의 미학
책의 중반부는 우리의 옛 미의식이 단순한 미적 판단이 아닌, 자연과 우주의 원리에서 비롯된 세계관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 핵심은 바로 음양오행입니다.
지금은 일상에서 거의 느끼지 못하는 개념이지만, 예를 들어 휴대폰 자판의 ‘천지인’ 배열 역시 음양오행의 원리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삶의 질서를 이루는 뿌리로 인식했습니다.
특히 감명 깊었던 부분은 절하는 손의 위치입니다. 설날에는 왼손(양)이 위로 가고, 상갓집에서는 오른손(음)이 위로 간다는 설명은 음양의 철학이 우리의 몸짓 하나에도 스며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6. 마무리
『오주석의 한국의 미』는 우리 미술의 기법이나 사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미의식이 얼마나 깊은 철학과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성실하게 풀어내며, 지금 우리의 예술 감상, 삶의 태도까지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예쁜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진실한 것’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며, ‘참된 것’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때로 낡고, 주름지고, 검버섯이 피어 있어도 진실하다는 이유로 오래도록 기억됩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는 그런 진실을 그린 그림들과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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