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



참 재미있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 과거에 쓴 책이 개정판으로 거듭나는 ‘사건’을 경험하여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고 썼는데, 나 또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좋은 책을 개정판 출간을 통해 읽게 되어 행복하다.

묵직한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부유하게 살아가기 위해 경제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위를 말해주는 자기 계발서는 아니다. 
계속 돈 이야기를 하기는 한다.
소설가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고,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당대에 유명해지고 엄청난 수입을 올렸음에도 평생 돈에 시달리며 살았던 이해하기 어려운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생을 통해서, 또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서 듣게 되는 돈 이야기다.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유’와 ‘시간’ 그리고 ‘인간관계의 기본적 고리’가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는 돈에 대한 생각을 바르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반성하기도 하며, 알지 못했던 경험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 앞으로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새겨두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곳도 많다. 
그런데 몇 문장을 뽑아 밑줄 긋기가 어렵다. 
의미가 하나의 문장으로 함축되기보다 여러 문장들이 합쳐지고 어우러져 하나의 생각을 전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8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배경이 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족 관계와 간략한 일생을 소개한 1장 ‘낭비가로 태어나다’를 제외하면 각 장 마다 돈과 관련된 주제를 하나씩 다루고 있다. 
먼저 각 장의 주제에 어울리는 그의 소설 하나를 선택해 깔끔하게 정리된 줄거리를 들려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로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정도만 겨우 알고 있던 내겐 한 작가의 대표작 대부분을 한눈에 훑어보는 덤을 얻어 유익했다.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도박꾼’,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각 장의 중심을 이루는 소설이다. 이렇게 많은 작품이 하나 같이 저마다 인생의 어떤 정수를 담고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그 흡인력이 당대뿐만 아니라 긴 세월 동안 꾸준히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 놀랍다. 

중심이 되는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상황이나 대사를 주로 인용하고 필요할 때면 작가의 다른 소설이나 다른 작가의 소설까지 자유롭게 인용하며 맛깔난 설명을 덧붙여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일반인으로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설과 관련된 평론이나 논문, 다양한 전기작가의 말까지 풍부하게 들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의견까지 알 수 있도록 충분히 소개하였는데 평생 도스토예프스키를 전공한 사람의 연륜과 지력이 느껴진다. 교수로 재직하다 2024년에 퇴임하셨다니 그동안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퍽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을 하였을 것 같다.

고리대금업을 돈의 증식 기능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고 돈의 본래 목적인 교환 기능에 위배되어 옳지 않은 행위로 판단하며, 인간의 생식 기능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을 소개하였는데 신선하고 흥미롭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평생 돈 때문에 시달리며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죽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평생 돈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원하지는 않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거기에 비결이 있는 것 같다.
반면, 평생 동안 부자로 살며 명예를 누려 도스토예프스키의 부러움을 샀던 톨스토이가 고통스러운 임종을 맞았다고 운을 띄웠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책과 함께 개정판으로 재발간 된 저자의 책이 톨스토이의 소설을 중심으로 다룬 ‘인생의 허무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데 읽고 싶어 진다. 설마 깨알 같은 책 홍보(?)는 아닐 테니까.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고?
돈만이 인생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600

 

돈에 관한 사실(fact)과 진실(truth)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 차이로 인해 많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뀐다. 때로는 실재하는, 때로는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때로는 눈에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감춰져 있기도 한 이 3,000 루블은 인간과 돈의 관계 전부를 함축해 주는 불길한 상징이다.(324)

 

한쪽에 돈이 주는 자유, 자유로서의 돈, 돈 덕분에 확보되는 자유가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돈이 있는데도, 아니 바로 돈 때문에 생기는 예속의 굴레가 있다. 이 경우에 자유는 오로지 돈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만 가능해진다. (...) 어떤 자유를 추구하느냐는 각 개인의 결정에 따른다.(334)

 

728x90

'Reviews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 현대 사회 생존법  (6) 2024.10.21
독서] 세뇌의 역사  (7) 2024.10.08
독서]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5) 2024.09.29
독서] 네, 수영 못합니다  (2) 2024.06.21
책] 화가가 사랑한 나무들  (2) 2024.06.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