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잠시 멈춘 2월의 끝자락에 제주시 원당봉에 자리한 불탑사를 찾았다.
고즈넉한 산자락에 자리한 사찰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돌담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품은 이야기 같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한 평온이 밀려온다.

사찰의 지붕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 아래, 정교하게 짜인 나무 기둥과 화려한 단청이 빛을 머금고 있다. 마당 한쪽에는 하얀 석등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지나가는 바람을 맞이한다. 돌계단을 오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 안에 쌓여 있던 무거운 감정들이 조금씩 흩어지는 듯하다.
사찰 여행이 주는 특별함은 그곳의 건축미나 문화적 가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롯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이곳에 서면, 우리는 비로소 느린 호흡을 배우고, 고요 속에서 스스로를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겨울이 지나간 자리, 앙상한 나뭇가지마저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풍경이 된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더라도, 이곳의 평온함은 변하지 않는다. 마치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는 듯한 따뜻한 품과 같다. 가만히 돌담을 쓰다듬으며, 이곳에 새겨진 오래된 흔적을 따라가 본다. 차가운 돌의 감촉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위안이 전해진다.


사찰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그것은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다. 바람은 여전히 부드럽게 지나가고, 기와 끝에 매달린 풍경이 작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마치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이곳에서 얻은 평온함을 가슴에 품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어쩌면, 삶이란 이렇게 잠시 멈춰 서는 순간들로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사찰이 전해주는 고요한 위로 속에서, 우리는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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