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인생의 허무는 어디에서 오는가
- 저자
- 석영중
- 출판
- 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24.10.08
책이름 바꾸길 참 잘했다.
이 책은 저자가 15년 전에 출간한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의 개정판이라 한다.
15년 전 이름 그대로 서점에 나와 있다면 사 읽을 사람이 있을지 염려된다.
톨스토이나 철학, 도덕 전공하는 사람이거나 도덕 교사 정도가 아니라면
누가 도덕에 미치는 것이 궁금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읽은 같은 저자의 책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를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긴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은 젊을 때부터,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도 나이가 지긋해지면
한 번쯤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고
가끔 인생의 허무를 느낄 때가 있기 마련인데 그럴 때 서점에 들렀다가 집어 들기 좋은 책 이름 아닌가.
그런데 책의 내용은 인생의 허무에 대해 논하기보다
톨스토이 개인의 인생과 생각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내용을 보면 15년 전 제목이 내용을 더 잘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가 책 이름을 바꾸었지만 내용은 거의 그대로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지난번 책에서 각 장 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각기 다른 소설을 중심에 놓고 다른 저작들을 조금씩 인용했던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나 카레니나’가 중심을 이루고, 그 밖에 ’ 크로이체르 소나타’, ‘전쟁과 평화’ 등 톨스토이의 다른 소설에 나오는 인물에 대한 묘사나 그와 그의 가족들의 일기 등을 인용하였다.
일반 독자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톨스토이 연구자들의 다양한 비평과 연구서들의 내용을 풍부하게 소개하는 것은 전작과 마찬가지여서 책을 읽는 재미에 깊이를 더해 준다.
많은 예문을 통해 지은이의 논리를 전개하여 글이 쉽게 읽히면서도 설득력이 강했다.
후대에까지 전해질 90권에 이르는 명작을 쓰는 지식을 갖고, 당대에 대문호의 명예를 얻었으며
막대한 재산과 건강까지 누렸던 톨스토이가 인생의 허무를 느꼈다니
무엇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서민으로서 당황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톨스토이가 그 많은 부귀영화를 놓고 떠나게 될까 늘 두려워했다는 걸 생각하면
언제든 가볍게 버리고 떠날 수 있을 정도의 부를 가진 것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인생의 허무는 결혼 생활에서 오는가.
마음껏 바람피우고 요란한 성생활을 한 그가 결혼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이해되지만,
올바른 삶을 위해 결혼을 하지 말라거나 결혼한 사람은 당장 이혼하라는 충고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육식성 인간을 나쁜 인간성과 연결하고 채식을 권장한 부분은
단순한 식사가 식사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수세기 전에 간파한 안목이 놀랍다.
도살장을 묘사한 그의 글을 읽으며
슈퍼에서 깔끔하게 포장되어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으며 판매되는 고기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자리에 놓이게 되었는지 알게 되는데
고의였던지, 무의식적이었던지 간에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을 직시하게 되어 충격을 받게 된다.
음주와 흡연의 문제에 대해 지적한 글도 날카롭다. 물론 애주가나 애연가는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로 거주해야 할 장소도 살펴보았는데
살아가는 장소를 도시와 시골로 나누어 비교한 것도 재미있다.
도시에서의 모든 삶을 타락으로 몰아갈 수야 없겠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로 크게 성공한 톨스토이가 자신의 작품 거의 다와 모든 예술을 악으로 칭하며 해악을 지적한 것도 당황스럽지만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없지 않았다.
페이지가 넘어가며 알게 되는 것은 톨스토이가 인생의 허무를 벗어나는 방법은
선한 삶, 정직하고 성실한 삶, 절제하는 삶뿐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허무를 벗어나는 방법이 먼저 나오고
마지막 장에 가서야 인생의 허무를 가져오는 결정적인 한 방이 나온다.
바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다.
죽음에서 오는 허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종교를 연구했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니 안타깝다.
책을 읽으며 오타로 보이는 단어와 띄어쓰기 잘못이 너무 많이 눈에 띈다.
기왕 개정판을 내면서 꼼꼼하게 교정 작업을 거쳤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지난번 책 표지의 그림도 그랬지만
이번 책 표지의 그림도 손에 잡고 있는 것이 무언지 궁금한데
끝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혹시 아시면 댓글로...
그가 원했던 이상적인 부인은 정숙하고 머리도 좋고 순결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남편에게 순종적이면서도 남편을 귀찮게 하지 않을 정도로 독립적이고, 남편에 대한 사랑과 이해심으로 충만해 있고,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여자였다. 때에 따라서는 남편과 더불어 인생철학을 논할 수 있을 만큼 지적이면서 또 어떤 때는 농사꾼 아낙네처럼 순박함 그 자체인 여자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였다.(104)
인생은 참 허무한 것이다. 아내에게 저작권을 주기 싫어 그토록 노심초사하며 몰래 유언장을 작성했던 톨스토이도, 그의 뜻을 받들기 위해 소피야 부인과 혈투를 벌였던 체르트코포도, 저작권 처리를 위임받아 권력을 휘둘렀던 알렉산드라도, 저작권을 소유하려고 그토록 몸부림쳤던 소피야 부인도 톨스토이가 사망한 지 7년 뒤 러시아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알 수 없었다. 공산혁명은 저작권 싸움, 일기장 싸움, 유언장 싸움, 이 모든 것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 공산주의 나라에서 모든 것은 국가로 귀속됐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무엇 때문에 그토록 싸웠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서로를 증오했단 말인가. 인간의 탐욕도, 그 탐욕을 미워하는 도덕도 모두 부질없다.(126)